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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23 14:11 수정 : 2018.08.23 14:14

그림 김태권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말이 있어요.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뜻. 무더운 여름에 화로는 애물단지. 그러고 보니 나도 화로구이를 먹은 지 한참입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의 양과 곱창! 그 소리도 냄새도 좋아하지만, 이번 여름은 너무 덥네요.

오늘은 일본식 화로구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름은 ‘호루몬야키’. ‘야키’는 구이라는 뜻인데 ‘호루몬’은 뭘까요? ① 자양강장에 좋을 것 같아 ‘호르몬’ 구이라 부른다는 설. ② ‘버리는 것’이라는 뜻의 일본어 ‘호루모노’에서 온 이름이라는 설. 원래 일본에서는 소를 잡아도 양과 곱창은 먹지 않고 버렸대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내장 먹는 방법을 누군가로부터 배워 일본식 양념을 곁들여 먹게 되었다는 겁니다.

한국과 일본은 곱창을 구워 먹는 방법이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가스불에 불판을 올리고 흘러나온 기름에 김치를 구워 먹는 한국식. 일본식은 화로에 석쇠를 올리고 양과 곱창을 굽는데요, 달짝지근한 양념이 특징 같아요. 달고 짜고 기름진 맛은 실패할 수 없는 조합. 유탕 스낵, 기름에 튀긴 과자의 맛이기도 하고요.

국물 요리도 한국과 일본은 간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의 곱창전골은 매운맛과 짠맛이 특징. 한편 일본 요리 ‘모츠나베’는 달달한 맛이 나더군요. (‘모츠’는 내장, ‘나베’는 냄비, 즉 국물 요리라는 뜻.)

곱창의 고소한 맛은 실은 기름의 맛. 한국 요리는 매운맛으로 기름의 느끼함을 잡으려고 하고, 일본 요리는 단맛과 짠맛을 더해 입에 착착 붙게 했지요. 상상력을 펼치면 다른 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할 터. 예를 들어 처녑과 곱창을 토마토 소스로 조리하면 이탈리아의 ‘트리파’ 요리가 됩니다. 생김은 매운 곱창볶음 같아도 맛은 새콤하고 짭짤해요. 처녑과 양을 데친 후 차게 식히고 올리브 기름을 둘러 샐러드처럼 담백하게도 먹고요.

화로구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일본 사람들은 곱창 굽는 방법을 누구에게서 배웠을까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20세기에 일본에 간 한국 사람들이 가르쳐줬다는 설. 돈을 벌러 간 사람도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도, 아무려나 현해탄을 막 건넌 한국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도축 후 버리는 내장을 가져다 먹었고 그걸 본 일본 사람들도 내장을 먹기 시작했다는 스토리. 버려진 것의 화려한 부활이라, 감동적이지만 신빙성은 낮습니다. 이미 7세기에 내장을 조리해 먹은 기록이 일본에 남아 있다니 말이에요.

그나저나 하로동선이라는 예스러운 말을 나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옛날에 아버지가 신장개업한 고깃집에 식구들을 데려갔어요. 그 가게 이름이 ‘하로동선’. 이십 년도 더 된 일입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개혁을 걸고 15대 총선에 나선 젊은 국회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이상은 아름답지만 결과는 낙선. 음식점을 차리고 “여름에는 화로가 쓸모없어 보여도 때가 되면 긴요하게 쓰일 것”이라며 이런 이름을 지었다죠. 이때 손님을 맞던 낙선 의원들이 유인태, 원혜영, 이철, 김홍신, 김원웅,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구절이 <성서>에 나와요. 버리던 부위가 귀한 식재료가 되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면 사람들은 화로를 찾죠. 뜨끈한 화로구이가 사무칠 날이 곧 오겠지요. 물론 그전에 이 지긋지긋한 더위부터 꺾여야겠지만.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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