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09 09:34
수정 : 2018.08.0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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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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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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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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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요. 입맛도 없고요. 오늘은 시원한 물회 이야기를 해보죠. 엉뚱한 질문, 물회와 비슷한 서양 음식이 무엇일까요? 몇 해 전 제주에서 독일인 친구와 함께 한치물회를 먹었어요. 입에 맞을지 걱정했는데 무척 좋아하더군요. “카르파초 같다”나요. 토마토 국물에 아삭한 오이와 마늘과 식초와 올리브유와 향신료를 넣어 먹는 스페인의 차가운 수프가 바로 카르파초. 무더위에 입맛을 잡아주죠.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붉고 차가운 국물과 알싸한 마늘 향과 식초의 새콤함이 닮았습니다.
물회라고 하면 우리는 일단 회와 양념장을 주연으로, 채소와 국수는 곁들인 조연 정도로 생각합니다. 차가운 물은 엑스트라. 그런데 독일 사람한테는 카르파초처럼 보였다니, 국물이 주연이고 회가 조연이 된 셈이죠. 왠지 색다른 요리가 된 것 같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물회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회를 맵고 차게 먹는 것이 물회의 본질이 아니라는 거죠. 양념장도 다양하더군요. 초고추장 물회를 많이 먹기는 하지만, 나는 된장에 물을 부어 먹는 물회가 달고 신 맛이 덜해서 더 좋아요. 된장과 어울려 아삭한 채소 맛도 더 돋보이고요.
회도 가지가지. 가자미나 광어처럼 흰살 생선을 좋아하는 분도 많죠. 한치물회는 워낙 유명한데, 산 채로 먹는 활 한치를 좋아하는 분과 냉동 한치를 좋아하는 분이 취향이 갈리더군요. 동해안의 고둥이 들어간 물회도 꿀맛입니다. 자리돔을 썰어 넣은 자리물회도 기가 막히죠. 성게를 곁들인 자리물회를 제주시의 숨은 맛집 ‘모슬포해안도로식당’에서 먹어본 일이 있습니다. 소고기 육회로도 물회를 합니다. 그래서 ‘고기고기’ 코너에 쓴 것이지만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 사람과 조선 사람이 회를 놓고 대화를 해요. “조선 사람은 어떻게 회를 먹니? 비위 상해”라고 중국 사람이 ‘디스’를 해요. “야, <논어>에 보면 ‘회는 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회불염세·膾不厭細)’라고 했어. 공자님도 드시던 거야”라고 조선 사람이 맞받아칩니다.
공자가 먹던 회는 아마 육회일 겁니다. 회(膾)라는 글자를 보죠. 왼쪽 달 월(月)처럼 생긴 글자는 원래 고기 육(肉)이었습니다. 예전에 이 지면에서 가장 오래된 고기 요리법의 하나로 꼬치구이를 소개한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 구울 자(炙)라는 글자를 언급했어요. 이 글자도 고기를 불 위에 얹은 모양. 두 글자를 합하면 ‘회자’가 됩니다. ‘인구에 회자되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대요. 회와 구운 고기는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좋아하는 것. (그래서 ‘회자되다’라는 말을 구설에 오른다는 나쁜 뜻 말고 좋은 뜻으로만 써야 한다는 지적도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옛날 동아시아에서는 사람들이 생선회와 육회를 두루 즐겼다는 이야기.
<어우야담>이 ‘회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음식’이라며 좋은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조선 무사들이 뱀을 회로 먹는다더라’며 괴로워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책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애저 회’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동네에서 돼지를 잡을 때 돼지 배 안의 새끼돼지를 따로 꺼내 어르신께 물회로 대접해드렸다고 합니다. 날로 먹는 돼지고기라니 맛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설명을 듣고도 괴로워하지 않고 먹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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