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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2 09:12 수정 : 2018.08.02 11:02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더운 여름에 더운 음식을? 끝나지 않는 ‘이열치열’ 논쟁입니다. “여름에는 뜨거운 차를 마셔야 한대. 냉면은 겨울 음식이라고 하더라고.” “아니, 왜?” “그게 섭리에 맞대. 생각해봐,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는데 보통사람이 여름에 찬 음식을 먹었으려고?” 이십여 년 전에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일리는 있죠.

그러나 올해는 너무 덥네요. 따뜻한 음식을 먹을 용기가 안 납니다. 고기도 뜨겁게는 못 먹겠어요. 입맛을 되찾기 위해 차가운 고기의 목록을 주문처럼 읊어볼래요.

얼마 전 초계탕에 대한 글을 썼죠. 차가운 국수와 함께 먹는 고기는 일품입니다. 평양냉면에 소고기 수육은 인기 있는 조합. 나는 돼지고기 편육을 얹는 걸 더 좋아합니다. 돼지갈비면 더 좋죠. 베트남 북부 음식 분짜는 구운 고기를 느억맘 양념에 비빈 차가운 쌀국수에 얹어 먹는 요리입니다. 일본의 폰즈 소스에 메밀국수와 돈가스를 축여 먹는 것도 좋아요. 국수는 없지만 무를 갈아 돈가스에 듬뿍 얹어 시원하게 먹는 오로시가스도 좋습니다.

너무 더워 토할 것 같다가도 로스편채를 생각하면 속이 가라앉고 입맛이 돕니다. 소고기 덩어리를 겉만 살짝 익힌 다음 차갑게 식히고 얇게 저며요. 매콤한 무순, 얇게 저민 양파, 체 썬 깻잎, 아삭아삭한 채소를 얹어 둘둘 말지요. 새콤한 간장소스를 축여 입안에 쏙. 비싼 한식집에 가야 볼 수 있는 요리라, 요즘 통 먹지 못했어요.

편하게 먹는 다양한 콜드 컷. 런천미트라고도 하고 런치미트라고도 하고, 데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서양 가공육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영국 음식 최후의 자존심 로스트비프, 언제 어떻게 먹어도 좋은 훈제 햄, 닮은 듯 다른 프로슈토와 하몬, 짭짤하고 기름진 살라미, 기름지고 매콤한 초리조, 씹을수록 맛이 나는 말린 소시지 등. 나는 평소에 스팸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며칠 전에는 구운 스팸의 짭짤한 맛이 사무치더라고요. 땀을 너무 흘렸더니 몸이 소금기를 원하나 봐요.

차가운 고기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소고기 카르파초입니다. 차가운 날고기를 얇게 썰고 올리브기름을 두르면 끝. 카르파초란 이름의 유래는 르네상스 화가 비토레 카르파초. 붉은색과 흰색을 잘 썼는데 하필 그 색이 칵테일 바 주인이 개발한 안주와 닮았다고 하는군요. 이름도 고풍스럽고 조리법도 간단해 오래된 요리인 줄 알았는데 웬걸, 1950년에 등장했대요. 아무려나 날고기가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입니다.

차갑게 먹는 고기 요리에 육회가 빠질 수 없죠. 저번에 타르타르스테이크도 맛보았거니와, 날고기에 대해서는 나눌 이야기가 여전히 많군요. 오늘은 초밥처럼 먹는 소고기초밥 이야기를 할게요. 익히지 않은 소고기를 얹은 초밥은 ‘참치 대뱃살 초밥’을 닮았죠. 맛도 그만큼 훌륭하고요. 토치로 겉을 살짝 그을리면 더 맛있어집니다. 고기며 식초며 겨자, 냉이 향기에, 군침 고이는 불 냄새까지 나거든요.

차가운 고기로 입맛을 잡고 영양을 보충해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분이 그렇다는 거죠. 여름을 이기기 위해 고기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남의 살을 먹지 않아도 영양을 얻을 방법은 다양하지요. 머리로는 나도 압니다. 하지만 나는 덥고 힘들다는 핑계로 올여름도 육식을 줄이지 않습니다. 몸이 조금만 힘들면 쉽게 타협을 해버리는 것이 인간인가 봅니다.

김태권(먹기 좋아 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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