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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5 21:08 수정 : 2018.07.25 21:38

김태권 그림.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여름철 보양 음식의 세 가지 조건. 첫째 몸에 좋아야겠죠. 둘째 입맛을 돋워야 합니다. 셋째 더위를 잊게 해주면 좋겠어요. 땀을 쏙 빼는 이열치열 음식이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차가운 음식이건 말이에요. 예를 들어 복날의 대표 과일인 수박. 첫째로 수분을 보충해주고 둘째로 단맛이 입에 맞고, 셋째로 차갑게 먹기 좋습니다.

고기 가운데 꼽으라면 초계탕 아닐까요. 가운데 글자 ‘계’가 무슨 뜻인지를 놓고 요즘 말이 많더군요. ‘겨자를 뜻하는 방언’이라는 설도 있지만, ‘닭 계(鷄)’라는 해석이 맞을 것 같습니다. 겨자보다 닭이 비싸고 손도 많이 가잖아요. 삶은 살코기를 가늘고 길게 찢습니다. 보양식의 첫째 조건, 영양을 담당하는 초계탕의 닭가슴살.

‘초(醋)’는 물론 식초라는 뜻. 아무리 입맛이 없을 때라도 식초가 적당히 들어간 국물은 술술 잘 넘어가더라고요. 찢어놓은 닭가슴살을 새콤달콤한 국물에 넣어 먹습니다. 입맛 없는 사람도 먹어야 한다는 둘째 조건을 충족시키는군요.

신맛과 닭 요리는 궁합이 좋습니다. 깐풍기나 ‘레몬소스 닭고기’처럼 중국 요리에서도 자주 보는 조합이죠. 그런데 이 음식들은 튀긴 요리라 뜨거워요. 초계탕은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지요. ‘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초계국수라는 이름도 자주 봅니다.) 살얼음이 낀 초계탕 국물, 셋째 조건인 더위를 잊게 하는 비법이고요.

닭고기, 새콤달콤, 차가운 맛. 그러고 보니 산둥 요리인 샤오지도 비슷한 조합입니다. 한자로는 소계(燒鷄), 구운 닭이라는 뜻이지만 중국 요리책을 뒤져 보면 튀겼다가 삶는 방법을 ‘샤오’(燒)라고 하는군요. 영어권 사람들은 (중국식) ‘로스트 치킨’이라 부르나 봐요. 가끔 한국에서 ‘냉채 닭’이라고 소개되기도 하는데, 한국식 닭냉채와는 다른 음식입니다. 해파리냉채 소스에 해파리 대신 가늘게 찢은 닭이 들어가는 닭냉채는 초계탕과 비슷한 음식이죠. 식초 맛과 겨자 맛이 입맛을 사로잡지요.

샤오지는 해파리냉채보다 오향장육과 닮았어요. 큼직큼직하게 썬 구운 닭. 국물 소스를 촉촉할 정도로만 뿌려 차갑게 내지요. 다진 마늘이 듬뿍 들어간 새콤한 소스입니다. 여기에 오이와 고수를 얹어 먹습니다. 오향장육과 다른 점은 고기의 촉촉함. 퍽퍽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살코기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서울 연남동의 ‘향미’와 ‘하하’에서 즐겨 먹었습니다.)

샤오지와 초계탕을 굳이 비교하면? 껍데기를 먹는 방식이 다릅니다. 샤오지는 껍데기가 일품이에요. 짙은 갈색이 나게 구운 닭 껍데기. ‘베이징오리’처럼 바삭하지는 않지만, 소스가 밴 야들야들한 맛은 새콤달콤하고 고소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초계탕에는 껍데기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닭 껍데기 마니아한테는 아쉬운 점인데요, 초계탕으로 유명한 ‘평래옥’은 닭 껍데기를 따로 모아 매콤하게 무쳐줍니다. 이 무침을 못 잊어 가게를 찾는 사람도 많지요.

옛날에 텔레비전에서 어느 유명한 초계탕 집 앞에 닭의 석상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가게 손님을 위해 성수기에는 하루 수백 마리의 닭이 목숨을 잃는다, 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석상을 세웠다”고 밝히는 사장님. 우리는 닭을 마치 인간의 영양 보충을 위해 존재하는 생명체처럼 여기지요. 반면 영양을 위해 우리가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더운 여름에 이 문제를 생각하니 더 더운 기분이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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