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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19 09:28 수정 : 2018.07.19 09:42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밤길 택시, 입담 좋은 기사님이 들려준 이야기. “손님, 장충동 여기가 어쩌다 족발 골목이 되었는지 아쇼? 장충체육관을 멋지게 지어놓기는 했는데, 당시는 레슬링 말고는 할 게 없었어, 프로레슬링. 아무개니, 아무개니 유명한 선수들 있잖아요. 경기 마치고 나와 배는 고픈 데 돈은 없고. 무얼 먹겠소? 족발 말고 있겠어요? 그래서 여기가 족발 골목이 된 거요.”

흥미롭긴 한데, 사실일까요? 기사님은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에서 지어줬다”고 했는데(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찾아봤더니 사실이 아니었어요. 건축가 김정수가 설계해 서울시 예산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기사님은 “장충동 족발 골목이 유명은 하지만 진짜 맛있는 족발집은 다른 곳에 있다”고도 주장했는데, 이 부분은 각자 판단하시길.

제주 사는 친구는 “서울 족발은 맛이 없고 제주의 아강발이 맛있다”고 주장합니다. 맛의 우열은 모르겠지만 아강발 맛이 독특하기는 해요. 기름진 살코기보다 쫄깃한 껍질 맛이 두드러집니다. 아강발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가에 대해 여러 설이 있어요. 어린 돼지의 발이라고도 하고, 발목 아랫부분만 가리킨다고도 하고요.

슈바인스학세라고 하는 독일식 족발도 기가 막힙니다. 푹 삶은 다음 오븐에 한 번 더 구워줘요. 살코기는 보들보들, 껍질은 바삭바삭. 독일에서 1인분을 둘이 나눠 먹고도 속이 그득해 약국까지 간 기억이 있습니다. 소화제라는 독일어가 안 떠올라 “내 위장이 가득합니다”라고 말하니 약을 주더군요.

부산 차이나타운에서 먹은 중국식 냉채족발도 일품이었어요. 팔각 향기 은은한 냉채 양념, 쫄깃한 식감의 족발, 그 위에 채소를 얹어 한입 가득 집어넣습니다. 옛날 중국에는 족발이 들어가는 고급 닭고기 요리도 있었대요. 닭을 삶을 때 국물 맛을 위해 족발을 우려내고 고기는 버렸다고 합니다. 오늘날은 사라진 레시피라는데, 퍽 사치스러운 요리였네요.

족발은 왜 맛있을까요. 돼지의 껍질과 뼈에는 콜라겐이 많지요. 콜라겐은 가열하면 젤라틴이 된대요. 젤라틴은 젤리와 같은 성분. 족발은 요컨대 돼지의 맛이 응축된 고기 맛 젤리인 셈이죠. 이 쫀득쫀득한 식감에 양념과 향신료까지 곁들이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맛이 됩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족발을 먹을 때 불편한 생각이 듭니다. 만화가 최규석의 <사랑은 단백질>이라는 단편 만화를 보았거든요. 만화 속 주인공 자취생들이 치킨 배달을 주문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족발집 사장님이 대신 배달을 오고, 치킨집 사장님은 밖에서 슬피 울고 있지요. 족발집 사장님의 정체는 돼지. 치킨집 사장님은 닭. 족발집 사장님의 한 손(?)은 의수입니다. 치킨집 사장님이 왜 우는지는 짐작하시겠지요. 우리가 맛있게 먹는 고기란 결국 남의 살이라는 사실을 만화답게 그려낸 걸작이었어요.

족발은 서민의 애환이 담긴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사라진 닭요리는 빼고요.) 얼마 전 서촌의 족발집 사장님이 건물주를 때린 사건이 있었어요. 사건의 발단은 알려진 대로 건물주가 살인적으로 임대료를 올렸기 때문이고요. 그런데 족발집 사장님은 잡혀가 살인 미수로 처벌받고 건물주는 법과 제도가 보호해줍니다. 앞으로 족발을 먹을 때마다 이 일도 생각날 것 같습니다.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도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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