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12 10:25
수정 : 2018.07.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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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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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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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점쟁이 문어 파울을 기억하세요? 2010년 월드컵의 동물 스타, 승패를 정확히 ‘예언’했죠. 패배한 팀의 울컥한 팬이 “잡아먹겠다”고 위협했지만 파울은 천수를 누렸습니다. 이번 월드컵에는 일본의 문어 라비오가 일본팀의 조별리그 통과를 예측했다고 하죠. 그러나 라비오는 시장에 팔려 나갔어요. 이미 잡아먹혔겠죠. 일본 대표팀은 곧바로 16강전에서 탈락. ‘라비오의 저주’ 때문이라나요.
예언이나 저주처럼 초자연적인 능력이 문어에게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문어의 기원이 외계에서 왔다는 ‘학설’(?)은 최근 화제였습니다. 해외 과학자 수십 명이 “문어의 냉동 배아가 얼음 운석을 타고 지구에 도착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논문’을 출판했대요. 큰일이군요.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만간 외계인이 흐느적흐느적 쳐들어와 문어와 낙지를 즐겨 먹던 저 같은 지구인을 응징할지도 모르니까요.
문어와 낙지와 주꾸미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나요? (낙지와 주꾸미는 맛있는 부위도 제철도 달라요.) “배고픈 늑대는 염소와 양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말했지만, 미식가 늑대라면 먹어치울 대상을 엄밀하게 구분했을 겁니다. 그 맛을 모르는 영어권 사람들은 뭉뚱그려 ‘옥토퍼스(octopus)’라고 부르지만요.
자숙문어, 건문어, 문어숙회, 산 낙지, 낙지탕탕, 낙지호롱구이, 갈낙탕, 불고기낙지죽, 낙지김치죽, 낙지볶음, 낙지연포탕, 주꾸미구이, 주꾸미삼겹살구이, 주꾸미연포탕….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에요. 다른 나라 조리법도 빼놓을 수 없죠. 문어초밥, 다코야키, 타코와사비, 리소토, 지중해식으로 올리브 기름에 재운 문어 카르파초 등등.
그런데 요즘 고민입니다. 문어에 대해 모르는 게 나았을 것까지 알게 되었거든요.
문어가 지능이 높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미로에서 길을 찾고 병뚜껑을 돌려서 열고요. 도구를 사용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지요. 아주대학교 의대 장재연 교수는 문어를 “바다의 천재”라고 불렀습니다. 문어의 유전자 염기 서열을 연구한 한 외국 학자는 2015년에 “외계인을 연구하는 것 같았다”고 밝히기도 했고요. (올해 저 ‘외계 문어 논문’이 나온 것을 보고 후회했으려나요.)
제가 불편한 부분은 문어가 고통을 느끼고 기억한다는 사실이에요. 한술 더 떠 인간과는 달리 뉴런이 다리에 분산되어 있대요. 동물 전문가인 제니퍼 매더에 따르면 몸이 동강동강 나더라도 신경계가 발달한 다리 조각조각마다 고통을 느낀다는 의미라나요. 앞으로 낙지탕탕 볼 때마다 이 생각을 할 것 같네요.
길짐승과 날짐승의 살을 먹을 때 우리는 가끔 꺼림칙해요. 닭도 돼지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그런데 물고기나 문어에 대해서는? 가톨릭에는 육고기를 먹지 않는 금육의 날이 있어요. 대신에 그날 생선을 먹죠. (저번 글에 살펴봤듯이, 고기 좋아하는 양반들이 비버나 악어도 물고기라고 우겼다지요.) 고기는 안 먹어도 생선은 먹는 페스코 베저테리언이라는 채식주의자들도 있습니다.
문어처럼 물고기도 고통을 느끼고 기억한대요. 동물행동학자 조너선 밸컴이 쓴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책에 자세히 나와요. 네발짐승처럼 다양한 표정을 짓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라나요. 문어도 마찬가지. 하지만 물고기도 문어도 고통을 표현하는 자기들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애써 모른 척하더라도 말이에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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