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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05 10:30 수정 : 2018.07.05 10:41

그림 김태권.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춘추시대 초나라 이야기. 성왕은 형을 죽이고 임금이 되었습니다. 45년이 지나자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지요. 사로잡힌 왕은 말했습니다. “곰 발바닥 요리를 먹고 죽겠다.”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거절했어요. “진압군이 올 시간을 벌 속셈이군요!” 곰 발바닥은 질기기 때문에 오래오래 요리해야 한대요.

맛있는 요리였다는 소문이 자자한 곰 발바닥, 어째서일까요. 곰이 자주 핥아 그렇대요. 말도 안 되는 설명 같은데, 먹어보지 않았으니 저는 몰라요. 먹지도 않고 글 쓰는 게 자랑이냐고요? 곰 발바닥의 경우는 그래요. 먹으면 안 되는 요리니까요. 조리시간 때문이 아니라 곰을 살리기 위해서죠. 곰 발바닥과 웅담을 얻겠다고 마구 잡다가는 동아시아의 곰이 남아나지 않겠죠. 곰발바닥은 금지된 요리입니다.

얼마 전 보도된 흑곰 하이찬의 사연. 지난 연말 동물복지단체에 구조될 때까지 하이찬은 어슬렁거려 본 적이 없대요. 철창에 갇혀 살았거든요. 하이찬은 앞발이 없습니다. 둘 다 잘려나갔으니까요. 베트남의 곰 사육 농장에서 일어난 일. 술을 담그려고 그랬다는 추측이 있대요. ‘곰발바닥 술’이 비싼 값으로 팔린다고 하네요.

곰을 먹는 모든 일이 동물 학대인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냥을 허용한대요.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는 곰 고기를 먹는 일이 전통문화. 과일을 먹고 자란 두 살배기 곰의 고기가 특히 맛이 있다던데, 이런 디테일은 제가 확인할 길이 없네요.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에게 북극곰은 소중한 자원. 털가죽으로는 옷을 짓고, 고기는 문자 그대로 ‘단백질 공급원’이죠. 그래서일까요. 이누이트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곰을 잡아먹었대요. 곰을 사냥하면 나름대로 제사도 지내주고요(‘먹히는 동물에 대한 예의’는 이 코너의 일관된 주제입니다). 이누이트의 신화에 등장하는 곰은 말을 하고 얼음집에 사는 등 인간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사람하고 곰은 닮았어요. 앉고 섰을 때 뒤태도 비슷하고, 둘 다 잡식성이라 먹는 것도 겹쳐요. 그래서일까요? 사람이 곰으로 변하거나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신화가 많죠.

그리스·로마 신화의 칼리스토 이야기. 아름다운 칼리스토는 제우스의 아들 아르카스를 낳고, 헤라의 미움을 받아 곰이 됐습니다. 늠름한 사냥꾼으로 자란 아르카스는 훗날 곰과 마주치고 활을 겨눠요. 곰의 정체는 칼리스토였죠. 부모가 자식 손에 목숨을 잃을 위기.(초나라 성왕처럼요.) 제우스는 부랴부랴 둘을 별자리로 만들었대요.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입니다.

한국 신화에서는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죠. 사소한 문제 하나 지적하자면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와 이란. 중국 한나라 때 동아시아에 전파된 것 같대요. 단군신화가 문자로 기록된 고려 시대에는 마늘을 먹었겠지만, 기원전 2333년 이전에는 어려웠겠죠. (설마 “고조선의 영토는 사실 이란이었다”라는 주장이 나오지는 않겠죠?)

한국도 곰 농장이 있어요. 전두환 정권이 농가에 사육을 권장했는데 4년 만에 수출길이 막히며 일이 꼬였어요. 애물단지가 된 곰 신세. 사육 농가 사정도 딱하죠. 삼십 년 넘게 정부와 실랑이 중. 먹이도 제대로 못 먹고 방치된 사육 곰이 지금 육백여 마리. 작년까지 일단 중성화 수술은 마쳤다지만, 앞으로 이 곰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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