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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7 20:32 수정 : 2018.06.27 20:34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적장 폼페이오가 갑옷도 입지 않은 채 나타나자, 청룡도를 쥔 노장 영철의 팔뚝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삼세 군주 정은이 폼페이오를 향해 가로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서는가! 자객을 보내 나를 죽이려 했다고 들었다.” 폼페이오가 답하기를 “지금도 공을 암살하려는 중이외다.” 삼세 군주가 껄껄 웃었다. “나만큼 담대한 자는 귀공이 처음이오. 여봐라, 뜨거운 술을 내오도록 하라!”

지난 4월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급격한 변화가 꿈이냐 생시냐 싶죠. <삼국지>나 <수호지>의 한 장면이라면 차라리 믿길까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직접 ‘청룡도’를 들지는 않을 것 같지만.) 폼페이오가 5월13일에 했다는 말도 눈길을 끕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택하면 곧 부유해지고 “주민들은 고기를 먹게 될 것”이라나요.

왜 하필 고기일까요? 고기는 부와 번영을 상징하니까요.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는 사람들 눈을 피해 영업하는 인도의 소고기 레스토랑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지은이가 만난 젊은 인도인 사업가는 “육식은 경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요. 무슨 뜻일까요. 지은이 마르타 자라스카는 ‘소고기를 먹는 것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국적 회사를 위해 일하는 (신흥 부자) 무리에 속한다는 표시’라고 풀이합니다.

부유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거꾸로 육식이 원인이고 부강함이 그 결과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부국강병을 원한다면 고기부터 먹으라는 것. ‘조국 근대화를 위해 육식하자’는 주장이 한때 일본과 인도에서 유행한 사실을 우리는 지난 글에서 확인했지요. 물론 부자라서 고기를 먹든, 고기를 먹어서 부강한 국민이 되었든, 부와 육식이 짝을 이루었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흰쌀밥에 고깃국’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부의 상징이었죠. 북한에서는 한때 경제 성장의 슬로건처럼 쓰인 말이라고 하고요. ‘혼식 검사’를 기억하는 독자님이 계실 겁니다. 1980년대만 해도 잡곡이 섞이지 않은 밥으로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면 선생님께 혼쭐이 났어요. 흰쌀밥을 대단한 사치로 받아들이던 시절이 남한에서도 그렇게 먼 옛날은 아닙니다.

“흰쌀밥에 소고기미역국은 한국인의 로망이었다. …옛날 사람들이 단지 귀해서 그렇게 흰쌀밥을 갈망했을까?” <맛의 원리>에서 지은이 최낙언은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합니다. 이 ‘호사스러운’ 메뉴가 사랑받은 까닭은 가장 ‘소화하기 편한 음식’이기 때문이래요. ‘입과 코로 느끼는 맛 못지않게 내장기관에서 느끼는 맛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음식물의 양, 삼투압, 음식물의 온도, 형태와 크기, 촉감을 감지’하는 수많은 감각 수용체가 내장에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동양 사람들은 육식을 바라죠. 과거에 서양은 이 열망을 부추겼고요. (일본 메이지 정부에 육식을 권한 사람들도 19세기 일본에 와 있던 서양인 교사라고 합니다.) 오늘날 서양 사람들은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채식 위주 식단이 건강에 좋다고도 하고, 중국 사람들이 미국인처럼 소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 지구의 환경이 파괴된다고 걱정도 하죠. 고기를 먹으랬다가 먹지 말랬다가, 서양의 오지랖에 기분이 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폼페이오의 ‘고기 발언’이 싫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려나 전쟁보다는 고깃국이 폭격보다는 맥도널드 햄버거가 낫지 않겠습니까. 모처럼의 평화에 식욕이 돋는 요즘입니다. 평화야말로 최고의 반찬.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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