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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3 22:48 수정 : 2018.06.14 00:19

김태권 그림.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식 돼지 요리 세 가지. ① 앙두예트는 소시지처럼 소를 채운 돼지 창자 요리입니다. 알맹이 역시 돼지의 내장이죠. ② 라르도는 돼지비계 요리. (원래는 이탈리아 요리래요.) 불에 익히지 않은 돼지 등 부위의 지방을 돌로 만든 통에 넣고 숙성시킵니다. ③ 부댕도 돼지 창자 요리. 창자 안에 돼지의 피를 빵빵하게 채웠습니다.

가끔 ‘돼지돼지~’한 맛이 사무칠 때 생각나는 범상치 않은 요리들인데,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어 속상했어요. 내 이런 모습을 가엽게 여겼는지, 친구가 서초동에 있는 ‘메종 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셰프님의 열정이 느껴지는 아담한 공간이더군요. 여기서 나는 최고로 맛있는 부댕을 먹어보았습니다. 겉을 싼 창자는 쫄깃하고 안에는 돼지 선지가 가득. 곁들여 나온 구운 사과도 일품.

가끔 부댕을 ‘프랑스식 순대’라고 소개하는 글을 봅니다. 서울에서 흔히 먹는 ‘당면순대’말고, 남도와 제주의 ‘피순대’라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제주의 ‘찹쌀순대’는 피와 찹쌀을 듬뿍 넣어요. 제주 동문시장에 가면 ‘광명식당’에 들르지 않을 수 없죠. 가시리 마을의 ‘가시식당’은 제주 전통식인 몸국과 순댓국이 둘 다 맛있어 고민하게 되고요. (순대를 따로 시켜 몸국에 담가 먹으니 좋더군요.)

전북의 피순대에 맛을 들이면 당면순대는 성에 안 찹니다. 익산의 ‘순대국수’는 정말 맛있었어요. 국수는 국물에만 있고, 순대 안에는 피만 가득하지요. 정읍에서 우연히 찾아 들어간 피순댓집은 메뉴판부터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피순대와 돼지 부속 이름이 한참 나열된 다음, 공깃밥도 청량음료도 지나 메뉴판 끄트머리에 작은 글씨로 ‘당면순대’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돼지의 피는 순대로, 소의 피는 선짓국으로 많이 먹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세계에는 종교나 문화를 이유로 돼지나 소를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국의 한족은 농사를 짓다 보니 소 먹는 일을 꺼리고 후이족은 이슬람신앙 때문에 돼지를 먹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양을 널리 먹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가쓰미 요이치는 책 <혁명의 맛>에서 이야기하네요.

이 주장은 사실일까요? 중국 사람들이 양을 즐겨 먹는 것은 사실이죠. 다만 이슬람문화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양은 인기 메뉴였어요.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중산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전국책>에 따르면 중산국 임금님의 잔칫상에 양을 재료로 만든 ‘양갱(羊羹)’이라는 요리가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사마자기라는 신하가 얻어먹지 못했어요. 원한을 품은 사마자기는 남쪽 초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중산국을 멸망시켜 버렸다고 하네요. 이 칼럼의 주제인 ‘육식이 사람 잡는 이야기’와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양갱’의 레시피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자학과 문화사를 연구한 아쓰지 데쓰지는 〈한자의 수수께끼〉에서 ‘그럴 만큼 맛있는 요리였을 것’이라 재치 있게 지적했어요. 어쩌면 양고기를 넣고 끓인 고깃국이었을지도 모르죠. 아무튼 나중에 양갱은 양의 피를 넣고 끓인 양선짓국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들어간 검붉은 선지 덩어리의 모양을 본떠 일본에서 붉은 팥으로 달콤한 과자를 만들었대요. 우리도 익숙한 과자 ‘양갱’이 탄생한 사연이라고 합니다.

동서양을 오가며 핏덩어리 먹는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피는 익혀도 못 먹겠다는 분을 종종 만나는데요, 이해합니다. 나도 익히지 않은 피는 사절이거든요. 사슴의 생피를 마셨다는 옛날 사냥꾼들이 보기에는 나도 달라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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