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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3 20:22 수정 : 2018.05.23 20:35

그림 김태권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어찌 된 일일까요. 아름다운 광주광역시에 갈 때마다 나는 패스트푸드로 배를 채웠습니다. 이 우울한 징크스를 끊겠다는 결심. 이번 광주행에 마침 한 시간이 비었어요. (실은 한 시간 일찍 내려갔습니다) 친구가 알려준 가게를 혼자 찾아가 오리탕을 영접했지요. 먼저 미나리 한 소쿠리를 샤브샤브처럼 데쳐 먹었습니다.

고기도 건져 먹었어요. 두툼한 껍데기는 닭과 비교할 수 없는 맛. 살코기가 푸석푸석하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국물이 배어 촉촉했어요. 오리탕의 주인공은 역시 국물. 감칠맛에 푹 빠져 입천장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켰습니다. 맛있는 오리고기를 국물 재료처럼 쓰다니 통 크고 호화로운 발상.

오리는 부위 별로 맛이 다양합니다. 골고루 다 맛있죠. 물갈퀴가 달린 발도 넓적한 부리도 식감이 독특합니다. 껍데기는 두꺼운 기름 덩어리지만 역한 맛이 없어요. 불포화지방이라 몸에 부담도 적다고 하네요. (지나치게 먹으면 좋을 일은 없겠습니다만) 몸집이 크니 살코기는 양도 푸짐하고 씹는 맛도 있습니다.

살을 먹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훈제로도 먹고 볶아서도 먹고 구이로도 먹고 불고기로도 먹고. 흙에 싸서 구워 먹기도 하고요. 황토로 오리를 싸서 불에 넣으면 살과 껍데기에서 기름이 빠져나와 오리 뱃속에 채워 넣은 찰밥에 뱁니다. 껍데기와 살코기를 먹고 난 다음 먹는 기름진 찰밥은 별미.

오리를 먹는 가장 호화찬란한 방법은 ‘베이징 카오야’(북경오리구이)가 아닐까요. 오리 한 마리를 통으로 굽지만, 네모지게 자른 껍데기 위주로 접시에 올립니다. 그 바삭바삭한 감촉은 젓가락으로 집을 때부터, 아니 눈으로 반질반질한 껍데기를 보는 순간부터 알 수 있습니다. 아담한 밀전병에 얹고 채 썬 채소를 곁들여 소스를 발라 입으로. 오이나 파의 아삭한 맛, 소스의 달고 짠 맛, 야들야들한 껍데기의 기름 맛.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욱 화려합니다. “옛날 베이징 오리에는 봄 오리와 가을 오리가 있어 계절에 따라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고 한다. 봄 오리는 요리를 하면 껍질이 얇고 산뜻하여 바삭바삭하고, 가을 오리는 지방의 맛이 깊고 탱탱하다.” 그래서 봄 오리만 먹는 사람도 있었다나요. 가쓰미 요이치가 쓴 <혁명의 맛>에 나오는, 아련한 미식의 기억.

껍데기가 맛있다지만 다른 부분이라고 버릴 리 있나요. 살코기는 껍데기와 같이 내기도 하고, 맵고 짜게 볶아주기도 합니다. 나머지 부분으로 정갈한 맑은 국물을 끓이고, 머리와 오리발은 간장에 졸이기도 하지요. (물갈퀴 씹는 맛이 나는 좋더라고요)

그런데 오리를 괴롭히는 잔인한 요리도 있습니다. 카오야장(??掌)은 옛날 중국의 오리 발바닥 요리. 미지근한 철판에 양념을 바르고 살아있는 오리를 올립니다. 철판을 달구면 오리가 뜨거워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화상을 입어 갈라진 발에 골고루 양념이 밴다고 하네요. 괴로워 펄쩍펄쩍 뛰는 오리의 발을 잘라 상에 냅니다. 너무 잔인해 이제는 금지된 요리법. 프랑스 요리 푸아그라는 아직 금지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거위, 요즘은 주로 오리를 가둔 채 목구멍에 강제로 음식을 들이부어 지방간을 만들어 먹는 악명 높은 요리죠.

“오리야, 미안해”라고 사과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리야, 나는 너를 죽여 탕이나 구이로만 먹을게. 육식을 끊을 수는 없거든”이라는 내 속마음을 오리가 용서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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