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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6 20:10 수정 : 2018.05.16 20:15

그림 김태권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얼마 전 본가에 들렀다 놀랐어요. 아버지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열중해 계시더군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 분으로 알았는데요. 혼자 맛집을 다니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이렇게 인기일 줄 몰랐습니다.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고독한 미식가> 만화책은 나도 좋아합니다) 얼마 전 이 드라마를 한국에서 찍었대요. 찾아간 곳은 서울의 돼지갈비 맛집.

세계 속의 돼지갈비. 서양식 돼지갈비 ‘바비큐 포크립’은 달고 짠 소스에 재워, 달고 짠 소스로 굽고, 달고 짠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한국식 돼지갈비는 달고 짜고 매콤한 양념에 만 하루를 재운대요. 과일과 양파와 흑설탕과 물엿으로 단맛, 마늘과 생강과 후추로 매운맛, 여기에 비밀병기 ‘계핏가루’로 매콤한 향을 더한다는군요.

돼지갈비 굽는 즐거움을 미각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시각도 다른 감각도 즐겁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단백질의 이미지는 시선을 확 잡아끌어 우리 뇌는 이들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하네요.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가 쓴 <왜 맛있을까>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불판 위 파르르 흔들리는 빨간 살의 이미지, 지글지글 육즙과 양념 끓는 소리, 기름이 타는 향기, 두꺼운 고기를 가위로 써는 손맛.

그런데 궁금하네요. 돼지갈비는 보통 여럿이 같이 먹지 않나요? 한국에서 혼자 고기 먹기란 아직 드문 일인데요. ‘고독한’ 미식가 고로 씨는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할지요.

혼자 먹기 대 함께 먹기. 책 <왜 맛있을까>는 혼자 먹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혼자 먹는 사람들은 나쁜 식습관을 갖는 경향이 있”고, “놀랄 일도 아니지만 혼밥족은 외로움을 더 느낀다”고 해요. 혼자 밥 먹을 때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틀어놓는 친구가 주변에 많습니다. 화면을 통해서라도 함께 먹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겠죠.

반론도 있어요. 한국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잖아요. 획일적인 회식 문화는 그 대표적인 예로 꼽힙니다. 회식에 안 갈 수도 없고, 내 마음대로 주문할 수도 없고, 화제가 불편해도 듣지 않을 수 없고.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무슬림 동료를 놀리려고 돼지고기 가게로 회식 장소를 잡거나, 채식주의자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일도 한국에서 드물지 않아요.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서양 최초의 채식주의자였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와 제자들은 채식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을까요? “고대 그리스는 주로 축제 때 (시민들이 함께 모여) 고기를 먹었는데, 이는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의미.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피타고라스를 사회의 이단아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책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적합니다. 이천오백 년 전 일인데 왜 요즘 얘기 같을까요.

고기를 혼자 먹을 사람은 혼자 먹고, 고기 안 먹을 사람은 안 먹고. 자기 일을 자기가 결정하는 사회를 바라요. 요즘 혼밥족을 위한 족발집과 삼겹살집이 늘고 있대요. ‘할랄 음식’(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된 식품과 음료, 식재료 등)이나 코셔(유대교의 음식 율법을 따르는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도 많아지면 좋겠어요.

채식주의자와 고기 먹는 사람이 함께 갈 밥집도요. 나는 돼지갈비 혼자 굽는 집을 찾고 싶어요. 아이랑 노느라 저녁 모임을 빠지다 보니 고기 구울 기회가 요즘 없었거든요. 깻잎에 갈비를 얹고 무채와 파를 싸서 한입에 쑥 욱여넣는 그 맛!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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