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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09 20:12 수정 : 2018.05.09 20:16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오늘의 주인공 ‘매운 양고기’와 만나기 전에 알아볼, 매운맛의 과학 두 가지.

① 엄밀히 말해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단맛·짠맛·신맛·쓴맛(그리고 감칠맛)은 혀로 느끼는 ‘미각’입니다. 반면 매운맛의 실체는 아픈 감각과 뜨거운 감각. 혀 말고 우리 몸 다른 부분으로도 느낄 수 있죠.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입술까지 화끈거리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화장실에서 엉덩이도 따갑고요.) 매운맛, 그 쾌락의 비밀은 ‘고통’이었어요.

② 매울 때 찬물을 마시면 더 맵다고 합니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지용성. 물이 아니라 기름에 녹는단 소리죠. 찬물은 매운맛 성분을 헹궈내기는커녕 굳은 기름으로 만들어요. 입안을 매운맛으로 코팅하는 셈. 매울 때는 우유를 먹는 편이 낫대요. 우유는 물과도 기름과도 섞이거든요. 매운 떡볶이에 칼피스나 요구르트를 곁들이는 이유죠.

양고기처럼 기름진 고기가 매운맛과 어울리는 이유기도 합니다. 순간순간 아무리 매워도(혀가 아파도) 양고기의 기름이 바로바로 입을 씻어주니까요. 닭가슴살이나 흰 살 생선처럼 기름기 없는 고기가 매운 양념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죠.

양고기 카레: 카레를 별로 맵지 않은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진짜 매운 카레를 드셔보세요. 온몸의 땀구멍이 다 열리는 기분이에요. 먹을 때는 ‘왜 내가 사서 고생을 하나’ 싶지만 먹고 나면 또 생각나는 맛이죠. 매운 카레에 양고기를 넣어 먹는 걸 나는 좋아해요. 양고기의 진한 향기는 카레에 밀리지 않고, 양의 기름은 입안의 매운맛을 닦아주거든요.

양고기 훠궈: 일본 사람 가쓰미 요이치는 지난 이십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유행한 음식으로 “맵디매운 충칭훠궈”를 꼽았어요. “중국 방방곡곡이 한 집 건너 훠궈집”이 되었다며 “각 지방 요리가 치열하게 군웅할거를 펼쳐온 중국 역사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놀랍니다. (최근 한국에도 가게가 늘던데요.) 충칭훠궈란 간단히 말해 중국식 매운맛 샤브샤브. 맵고 얼얼한 육수에 이런저런 고기를 살짝 데쳐 먹는 요리입니다.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이 매운 국물에 양고기를 담가 먹는 게 나는 좋아요.

매운맛 샤브샤브를 마라훠궈라고도 부릅니다. ‘마라’(麻辣)는 맵고 얼얼하다는 뜻. ‘마’는 초피 맛, 얼얼하고 아린 맛이래요. 추어탕에 넣어 먹는 얼얼한 맛의 흑갈색 가루 있죠? 그게 초피가루예요. 감각이 마비(麻痺)된다고 할 때의 마입니다. ‘라’는 고추 맛, 화끈하고 톡 쏘는 매운맛. 말이나 맛이 ‘신랄(辛辣)하다’고 할 때의 ‘랄’과 같아요. 마와 라, 두 가지 맛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훠궈의 국물 맛이 달라지죠.

그런데 가쓰미 요이치는 책 <혁명의 맛>에서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국물 맛을 결정하는 요소가 중국의 정치투쟁이라는 거예요. 그에 따르면 마(얼얼한 맛)는 덩샤오핑의 고향인 쓰촨성에서 좋아하는 맛이고, 라(화끈한 맛)는 마오쩌둥의 고향 후난성의 맛이래요. 그래서 덩샤오핑을 계승하는 세력이 강해질 때면 쓰촨 사람들이 힘을 얻으니 국물도 얼얼해지고, 마오쩌둥 쪽이 반격할 때면 반대라는 말씀. 왠지 거짓말 같기도 하지만, 문화혁명 시절부터 오십년이나 중국을 드나든 미식가의 주장이니 무시할 수도 없죠. 아무려나 흥미롭고, 맛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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