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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30 16:20 수정 : 2018.03.30 16:22

한때 친구들과 가던 단골 곱창집이 있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맛있는 걸 어떡합니까. 굶을 때 굶더라도 사 먹어야죠. 우울한 지식인의 포스를 풍기던 사장님이 전에 어떤 일을 하시던 분인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사진 속 김수영 시인 같은 표정으로 늘 묵묵히 곱창을 잘라주셨는데, 하루는 무겁게 입을 열더니 ‘곱창예찬론’을 설법하셨지요.

우선 “곱창은 초식동물에게서 가장 맛있는 부위”라는 것. 근거는 “사자가 영양을 사냥한 다음 제일 먼저 배를 열고 곱창을 먹는다”는 점. 정말? 내가 알기론 호랑이나 사자의 사냥 습관이 원래 그렇다대요. 이빨로 목을 물고 발톱으로 배를 찢는 이유는, 먹잇감의 숨통을 확실히 끊기 위해서죠. 악어의 경우에는 입에 문 채 물로 들어가 먹잇감을 죽인다고 하니까요.(물론 사장님 앞에서 그 말을 하진 않았지만요.)

다음으로 “곱창이 맛있는 까닭은 곱창 안에 낀 ‘곱’이라는 물질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하자, 사장님은 심각한 얼굴로 덧붙였지요. “곱창이라는 단어가 곱과 창을 합한 말이오.” 벌써 20년 전의 일이네요. 그때부터 곱의 정체는 제게 수수께끼였습니다. 최근 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대창(큰창자) 안에 든 물질은 무언지 알겠어요. 큰창자는 겉과 속을 뒤집어 빡빡 닦아낸대요. 대창구이의 ‘알맹이’는 그래서 원래 창자 밖 뱃가죽 안쪽에 낀 지방 덩어리. 육식이란 남의 살을 내 살로 삼는 일이거니와 이 경우는 소의 복부비만을 우리 배에 옮기는 셈이랄까요.

그런데 곱창(작은창자) 안에 든 곱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① 기름? ② 소화액? ③ 반쯤 소화된 사료는 아니겠죠?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봐도 곱의 뜻은 다양합니다.(좋은 의미들은 아니더군요.) “지방이 엉겨 굳어진 것”일까요? “눈곱”이라고 할 때의 곱은 아니면 좋겠네요. 아무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론은 유보.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의 고전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친 유쾌한 거인 영웅의 모험담입니다. 먹고 마시는 이야기가 가득해요. 거인 가르강튀아는 탄생도 비범합니다.(엽기적입니다.) 이른 봄의 성대한 잔치. 출산을 앞둔 가르가멜은 소금에 절인 소의 창자를 열여섯 통 두 말 여섯 되나 먹습니다.(<가르강튀아> 4장)

곱창을 먹은 사람들은 강가로 나가 유쾌하게 떠들며 포도주 잔치를 벌였어요.(5장) 그때 가르가멜은 진통을 느낍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어 배가 꽉 찬 상태였지요. 이런저런 기괴한 사연으로 정상적인 산도가 막히는 바람에 아기 가르강튀아는 몸의 위쪽으로 올라가 가르가멜의 왼쪽 귀로 태어났대요.(6장)

창자 요리는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똥을 연상시키기 때문이겠죠.(저는 어느 음식점에서 덜 씻은 큰창자를 먹어본 일이 있는데, 떠올리기 싫은 기억입니다.) 작가 라블레는 <가르강튀아>에서 “똥 껍질을 먹으면 똥이 먹고 싶어진다”는 말로 꼬집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곱창의 기름진 맛을 거부할 수 없어요. “소 창자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푸짐하고 맛있어서 누구나 손가락을 핥을 정도”라고 라블레도 인정했어요. 아무려나 식탐 가득한 영웅의 탄생에 어울리는 메뉴. 곱창에 맛을 들이면 먹기 바빠 곱의 정체에 신경 쓸 여유도 없죠.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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