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14 20:43
수정 : 2018.03.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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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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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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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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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기는 맛있어요.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 회로 먹어도 구워 먹어도, 수육도 국물도 맛있습니다. 한동안 유행한 ‘마블링’ 육질에 물린 육고기 마니아라면 마음에 드실 고기입니다. 살덩어리와 기름 덩어리가 딱 나뉘어 있거든요. 빨간 살코기는 부드럽고 하얀 기름은 역한 맛이 없습니다. 지방만 날것으로 따로 먹어도 맛있다니까요.
그런데 말고기를 먹으러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주 바깥에는 파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같이 먹을 분을 만나기도 어렵고요. 소도 돼지도 맛있게 드시지만 말이라면 어쩐지 께름칙하다는 분이 많더군요. 어째서일까요? 어떤 종교는 쇠고기를, 어떤 종교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지만, 말고기는 금하는 종교도 없는데 말이에요.
신화와 문학과 미술 작품을 보면, 말은 어쩐지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동물로 등장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라키아의 왕 디오메데스는 잔인한 악당. 사람 고기를 먹여 말을 길렀습니다. 결국 합당한 벌을 받지요. 영웅 헤라클레스가 그를 잡아 말한테 먹였으니까요. 귀스타브 모로 같은 후세의 화가들이 이 장면을 즐겨 그렸습니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 소인 나라와 거인 나라를 다녀온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동물이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는 나라. 그곳의 주인 ‘휴이넘’은 인간보다 우월한 동물입니다. 걸리버는 ‘휴이넘’ 종족의 미덕에 감탄한 나머지 인간 종족을 경멸하게 됩니다. 자기도 사람이면서 말이죠. 이토록 완벽한 ‘휴이넘’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말을 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연극 <에쿠스>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에쿠스’(Equus)는 라틴어로 ‘말’이란 뜻. 주인공 앨런은 정신이 불안정한 소년. 벌거벗은 채 마구간의 말들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 죄를 용서해달라고요. 그러나 말들은 앨런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입니다. 마치 신이 인간의 죄를 빤히 지켜보듯이. 견디다 못한 앨런은 쇠꼬챙이를 집어 말들의 눈을 찌르지요. 신이 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인간을 괴롭힌다고 믿었으니까요.(작가 피터 섀퍼의 대표작은 <아마데우스>와 <태양제국의 멸망>으로 인간이 ‘신’에게 해코지하는 내용입니다.)
인간을 먹고, 인간을 부리고, 인간을 정죄하고. 말은 어째서 여느 짐승과 다른 느낌일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태도에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라요. 다빈치는 말에 관한 작품을 많이 남겼어요. 말이 특별히 아름다운 동물이라 여겨 그랬대요.
제가 봐도 말은 먹기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운 동물입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인간의 눈에 아름답지 않은 동물은 불편한 마음 없이 먹어도 괜찮을까요? 괜한 딴죽 같지만 저만의 생각은 아니에요. 영국에는 ‘못생긴 동물 보호 협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2003년에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동물”로 멸종위기종 블로브피시를 선정해 널리 알렸지요. (정말 못생겼어요.) 단체의 취지가 눈길을 끕니다. 생물학자이자 코미디언인 사이먼 와트는 똑같이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이어도 “귀여운 판다의 고통은 널리 알려졌지만 못생긴 종은 관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이 운동을 시작했대요.
이상하지 않나요? 동물을 위하는 마음 때문에 우리는 판다를 걱정하고 육식을 불편해하지만, 그때조차 우리는 인간의 기준과 인간 위주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봐요. 생각할 거리가 많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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