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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5 10:16 수정 : 2017.12.25 15:03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스타 10인

2017년,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확 달라진 한 해를 보냈다. 올해 대중문화계에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브라운관과 스크린, 공연장을 누비며 평범한 갑남을녀들의 희로애락을 책임진 스타들이 있었다. ‘새로 뜬 별’도 있고 ‘재발견한 별’도 있다. <한겨레>가 올해 대중문화계에서 활약하며 남다른 존재감을 뽐낸 ‘스타 10인’을 뽑아 조촐한 상을 마련했다. 이른바 ‘한겨레 마음대로 이름 붙인 상’. 상에 따른 특전으로 ‘내년도 <한겨레> 문화면 1회 등장권과 함께 담당기자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약속한다.
(뱀발: 까방권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취소됨을 유의)

배우 나문희. <한겨레> 자료사진

칠순은 소녀라고 전해라상

나문희
배우인생 56년만에 ‘그랜드슬램’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농익을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올해 한국 영화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올 킬’ 한 나문희(76)는 노배우의 숙성된 연기가 가진 힘을 증명했다. 배우 인생 56년 만에 더 서울 어워즈를 시작으로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디렉터스컷 어워즈에 이어 올해의 여성 영화인상 대상까지 거머쥐며 그는 진정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데뷔 이후 영화, 드라마, 시트콤을 종횡무진하며 주로 조연으로 활동해온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새로 그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도깨비 민원 할머니 나옥분 역을 맡아 웃음과 감동,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는 인생 연기를 펼쳤다. 나문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가 역사의 아픔으로만 국한돼 비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큰 틀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지욱 평론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과 아픔을 온몸으로 체화시켜 표현해야 하는 나옥분 역은 연륜과 연기력으로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가능한 나문희 말고는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고 평가했다.

나문희의 수상 소감은 연기만큼이나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의 친구 할머니들, 나 상 받았어요. 여러분도 열심히 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꼭 상 받으시길 바랍니다”라는 청룡영화제 소감은 배우들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고군분투해온 노장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안겼다. 70대에 연기 인생을 새로 꽃피우며 올해 최고로 행복했을 나문희, “당신으로 인해 우리들도 행복했습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배우 양세종. 굳피플 제공

‘어머님이 누구시니’ 상

양세종
그윽한 그 눈빛…배역마저 빠져들다

단숨에 주연 꿰찬 무서운 신인
“향수까지 바꿔가며 역할 몰입
오롯이 그 사람되려 매번 주문”

좀더 들떠 있을 줄 알았다. ‘괴물 신인’ 등 온갖 말들이 수식하는 ‘올해의 인물’이지 않나. 그와 작업한 한 드라마 작가는 <한겨레>에 “아시아의 스타가 될 배우의 등장”이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뭐라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부족한 부분, 혼란스러운 마음부터 내비친다. “나 뭐 하고 있지, 내가 잘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2017년을 돌아보면) 막 행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그는 “절대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인기를 느낄 여유도 없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방송 관계자들이 2017년 티브이 최고의 사건으로 꼽은 양세종은 올해 드라마계에 드문 족적을 새겼다. 지난해 11월 <낭만 닥터 김사부>(에스비에스)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데뷔한 이후, 올해 1월 <사임당: 빛의 일기>(에스비에스) 조연을 거쳐, 6월 <듀얼>(오시엔)에서 바로 주연을 꿰찼다. 종영하기 무섭게 두달 뒤인 9월에는 <사랑의 온도>(에스비에스)로 지상파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우뚝 섰다. “신인이 단역도 거치지 않고 비중 있는 조연으로 데뷔해, 곧바로 주연을 꿰차는 건 드문 일”이라고 피디들은 놀라워한다.

양세종 특유의 집중력이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하는 배우로 만들었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면 오롯이 드라마 속 인물이 되겠다는 주문부터 건다. “원룸을 얻어서 캐릭터에 맞게 연습하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거기서만 살아요. 골방이라고 부르는데 침대, 스피커, 향초, 전신거울만 있어요.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놓고 알람용으로 사용하고 연락을 받지 않아요. 그래서 가족, 친구들한테 미안할 때가 많아요.” 일상과 연기를 분리시키지 않고 그 캐릭터로 사는 게 자신한테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시행착오 끝에 터득했다. “처음에는 촬영을 마치고 원래 양세종으로 돌아갔는데 다음날 모든 신을 망쳐버렸어요. 그때 나는 분리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캐릭터와 잘 어울릴 것 같은 향수를 골라 사용하는 것도 주문을 거는 행위다. <사랑의 온도> 때는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포 힘 블루 느와르’를 뿌렸다. “잔향이 살짝 어두우면서도 은은한 것이 온정선의 성향과 맞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자신에게 잘 맞는 연기법을 스스로 터득한 덕분에 그는 맡은 배역을 잘 씹어 먹으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정확한 발음과 중저음의 목소리, 묘한 여운이 남는 마스크를 그의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듀얼>에서 1인 2역을 맡아 선과 악을 매끄럽게 오간 점을 높게 산다. 쌍꺼풀 없이 가로로 긴 눈, 깊고 슬픈 눈빛 등이 여러 얼굴을 오갈 수 있다고 말한다. <듀얼> 관계자는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하는 정신력 또한 양세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악을 오가는 인물을 해낼 수 있을까, 멈칫하기도 했지만 일단 마음을 먹은 뒤엔 앞만 보고 갔다. “그땐 조명도 어둡게 하고, ‘골방’을 난장판으로 해놨다”며 활짝 웃을 때는 20대 청춘의 귀여운 모습이 나온다. 주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포장되는 걸 경계하는 성격 또한 그를 롱런할 배우로 꼽게 한다.

양세종은 나태주 등의 시집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레고리 포터의 재즈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새벽 거리를 수시로 걷기도 한다. 생활 자체가 일본 소설이나 수채화처럼 정적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태권도 시범단을 준비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 <스노우드롭>을 보고 배우를 꿈꿨다.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그 느낌이 심장을 때렸다”는 그는 고3 때 진로를 바꿨고, 어머니의 조언대로 “이 악물고 한” 끝에 지금의 양세종이 됐다. 2017년 큰 사랑 받았지만 바쁘게 산 탓에 “내가 잘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는 양세종은 그래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양세종은 어디 갔지. 나란 애는 누구였지. 돌아볼 시간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좀 쉬면서 천천히 들여다보려고 해요.” 인터뷰 내내 장점보다 단점을 귀 기울여 듣고, 조언을 흘려버리지 않던 그가 ‘내공’까지 쌓이면 얼마나 더 무서운 배우가 될까, 그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워너원의 강다니엘. 워너원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누나 지갑털이’상

강다니엘
대체불가 센터…“주인공은 너야 너”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해외 시장을 방탄소년단이 달궜다면 국내의 강자는 단연 워너원이었다. <프로듀스 101 시즌2>(엠넷)를 통해 탄생한 워너원은 데뷔와 동시에 정상을 찍었다. 이들은 지난 8월 2만석 규모의 고척스카이돔에서 데뷔 콘서트를 연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데뷔 앨범(리패키지 포함) 판매량도 100만장을 넘겼고, 광고 모델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인기를 반영하듯 현재 워너원 페이스북 팔로어 수는 56만명이 넘는다.

그중 <프로듀스…>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던 ‘센터’ 강다니엘의 인기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개인 광고 촬영이 쇄도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섭외 1위다. 이달 초엔 팬들이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을 빌려 그의 생일(12월10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워너원을 뛰어넘는 그의 인기는 다른 멤버들보다 넓은 팬층에 있다. 아이돌 주 소비층인 10~20대뿐 아니라 30~40대 여성들도 강다니엘을 ‘우리 애’라 칭하며 ‘누나 팬’을 자처한다.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다 보니 광고 쪽 파급효과도 상당해서 강다니엘 관련 굿즈는 나오는 즉시 완판이다. 그에게 빠진 워너블(워너원 팬클럽) 누나들의 지갑은 절로 열리는 셈.

팬들은 그가 반전 매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180㎝가 넘는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섹시한 그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젤리를 입에 달고 살며 ‘댕댕이’(멍멍이를 말하는 인터넷 용어)처럼 웃는 귀여운 모습에 누나들이 녹는다. ‘우리 애’의 미래를 걱정하는 책임감 강한 팬들이 있기에 강다니엘의 인기는 당분간 쭉~ 쭉~ 이어질 것 같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배우 마동석.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마블에서 전화올라’상

마동석
‘마블리’의 존재감, 이름 자체가 장르

“다들 ‘마동석으로 되겠느냐’고 의심하더니, 이젠 ‘마동석이 아니면 안 된다’고 확신하더라.”

<범죄도시>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의 이 말은 올해가 그야말로 ‘마블리’의 한 해였음을 증명한다. 2017년 마동석은 ‘신스틸러’에서 ‘주연’으로 자리바꿈을 하며 영화계의 대세로 우뚝 섰다.

사실 마동석의 시대는 일찌감치 도래했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군도: 민란의 시대>, <부산행> 등에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뽐내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산만한 덩치, 험상궂은 외모와 상반되는 귀여운 반전 매력으로 ‘마블리’라는 애칭도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벽은 있었으니, 바로 <두 남자>, <함정>, <살인자> 등 그가 주연한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징크스였다. ‘마동석=조연급’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위기였다.

하지만 올해 그가 중국 조폭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형사 마석도 역으로 주연한 <범죄도시>(680만명)가 예상을 뒤엎고 추석 시장을 장악하고, 뒤이은 코미디 영화 <브라더>(140만명)까지 선전하면서 마동석은 충무로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관객은 나쁜 놈을 주먹 하나로 제압하는 마동석표 ‘한 방 액션’에 통쾌해했고, 그의 비현실적 몸이 만들어내는 ‘코믹한 상황’에 폭소했다. “몸 자체가 무기인, 다른 도구는 필요 없는 캐릭터로 몸 자체가 장르화됐다”(황진미 평론가)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며, 그가 대체 불가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2018년에도 마동석의 질주는 계속된다. 우선 이달 개봉한 <신과 함께―죄와 벌>에 잠시 얼굴을 비치며 내년 여름 개봉할 <신과 함께> 2편에서 ‘성주신’으로의 활약을 예고했다. <원더풀 고스트>, <곰탱이>, <챔피언> 등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많이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새해에는 온 가족이 함께 ‘마블리’에게 환호할 수 있기를. 블링블링한 마블리의 시대는 이제 막, 그 문을 열었을 뿐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개그맨 김생민. 한국방송 제공

‘진작 몰라줘 죄송’상

김생민
차곡차곡 쌓아온 ‘생민라이프’ 활짝

“20년이나 걸렸다”며 김생민은 지난 11월 <연예가 중계>(한국방송2)에 출연해 펑펑 울었다. 리포터로 활약하며 늘 남의 영광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그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 자리에 앉은 것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기지가 않는다”던 그는 올해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시청자들이 좋아해주시니 감사하죠. 감사할 뿐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2017년 방송연예계는 김생민의 해였다. 연예계 생활 25년간 유지해온 근검절약의 삶이 팍팍한 2017년을 사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아껴 잘사는 ‘생민라이프’ 열풍을 일으켰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는데 사람들이 더 많이 웃어준다”는 그조차도 “25년간 가만있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의아해할 정도다. 8월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한국방송2)이 기폭제였다. 시청자가 보낸 한 달간 영수증을 분석해 재무상담을 해주는데, 서민들이나 챙길 줄 알았던 작은 절약의 가치에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소비패턴을 존중해주며 조언하는 태도 등이 호감을 샀다. ‘그뤠잇’(훌륭하다), ‘스튜핏’(어리석다)까지 요즘 개그맨들도 내놓지 못하는 유행어까지 양산했다.

무엇보다 김생민의 인기는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볼 수 있다는 희망찬가였다. 데뷔 이후 두각을 나타내는 프로그램 없이 <연예가 중계> <출발! 비디오여행>(문화방송) <동물농장>(에스비에스) 등을 각각 20년 안팎으로 해왔다. 말로 할 수 없는 상처도 있었지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며 튀려고 애쓰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꾸준히 성실한 자세로 임해왔다.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짙어져 꼼수가 늘고 내 것을 챙기려는 이기심이 팽배한 시대에, 감사할 줄 알고, 노력할 줄 아는 김생민의 모습은 일종의 ‘참고 대상’이 됐다.

그는 인기와 관련한 질문을 받을 때면 늘 “곧 끝난다”고 말해왔다. 처음 “두 달”이라던 예상 기한이 훌쩍 넘었다. 이젠 “6개월”이라며 자꾸 유통기한을 정하는 ‘스튜핏’ 한 그에게 시청자들은 말한다. 올해 당신은 ‘그뤠잇’ 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우주스타 DNA’상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로 세운 탑, 한류의 기둥

‘피 땀 눈물’로 채워진 방탄소년단(BTS)의 지난 4년이 ‘봄날’로 바뀐 해였다. 올해 대중문화계에 이들만큼 핫한 인물이 있을까. 알엠(RM),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 2013년 데뷔한 7인조 그룹 방탄소년단이 올해 케이팝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견의 여지 없는 올해의 음악인”(김윤하 음악평론가),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라고 칭하기에도 부족하다”(체인스모커스)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이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방탄소년단은 올해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중 2개 무대에 초청되면서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 5월 ‘빌보드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은 데 이어 11월에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무대에 올라 미국 전국 방송에 본격 데뷔했다. 해마다 미국 <빌보드>지가 연말 결산으로 선정하는 올해의 아티스트에도 10위에 올랐다.

자본과 국외 네트워크가 탄탄한 국내 3대 주요 기획사(SM·YG·JYP) 소속도 아니고, 한국어로만 노래를 부르는데도 이들이 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데엔 영리한 에스엔에스(SNS) 활용이 한몫했다. 데뷔 초기부터 멤버들이 개인의 소소한 일상까지 담은 동영상을 부지런히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나라 안팎에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가 굳건히 뿌리내렸다. 물론 팝 시장에서 사랑받는 글로벌 스탠더드한 음악, 절도 있는 칼군무, 리더 알엠의 출중한 영어 실력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소년들의 질주는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은 올해 2만명의 팬들과 함께했던 고척스카이돔 무대에 오르는 것(1월13~14일)으로 새해를 시작해 숨가쁜 국내외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한국인 최초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23일 저녁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콩쿠르가 가장 쉬웠어요’ 상

선우예권
연주는 담대하게, 예능은 소탈하게

지난 6월 북미권 최고 콩쿠르인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9)의 시계는 어느 때보다 빨리 가고 있다. 이번 콩쿠르를 포함해 모두 8차례 우승하면서 ‘한국인 최다 콩쿠르 우승자’란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폭발적인 관심을 받긴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그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선 객석의 환호로 앙코르곡을 5곡이나 연주하고서야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는 힘찬 타건에 더해 명쾌하고 절제된 피아니즘을 구사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인기는 뛰어난 기량 외에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먼저 부모의 재산 같은 뒷배경 없이 스스로 일군 성과라는 점에서 호감을 샀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16살 때부터 홀로 외국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2만~3만달러 정도 되는 우승상금이 나오는 콩쿠르에 자주 도전하게 된 이유다. 순둥이 같은 외모와 달리 무대에서 떨지 않는 담력과 침착함도 대중을 매료시켰다. 스스로 “대체로 떨지 않고 집중을 잘하는 편”이라고 말할 정도다.

최근 선우예권은 예능 프로그램 <이방인>(제이티비시)에도 출연 중이다. 독일 뮌헨에서의 싱글 라이프를 공개하며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다른 평범한 일상을 보여줘 호응을 얻고 있다. 동글동글 선한 호감형 인상에 허당기 넘치는 모습으로 ‘뮌헨 푸’라는 애칭도 생겼다.

그의 바쁜 행보는 2018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에선 내년 4월 통영국제음악제, 11월 세종문화회관 40주년 기념공연에서 협연이 예정돼 있다. ‘안단티노’(조금 느리게) 같던 삶의 속도가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로 변하는 중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배우 진선규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갑작스레 눈발이 날리자 손을 내밀며 미소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네가 진짜 주연상

진선규
‘수많은 진선규’ 그와 함께 울고 웃다

1년간 오디션만 100번 무명에서
‘범죄도시’ 위성락으로 이름 각인
“즐거운 연기의 길 묵묵히 걸어…
많은 배우들도 저처럼 기회 얻길”

열심히 일한 사람은 언젠가 빛을 본다. 이 명제를 확인시켜준 사람, 바로 배우 진선규다. 2017년은 김생민 등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실히 노력해온 배우들이 빛을 본 희망의 해였다. 특히 진선규가 빛났다. 그는 2004년 연극을 시작으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영화 <남한산성>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늘 ‘연기는 잘하는데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는’ 배우였다. 그런 그가 <범죄도시>에서 밑도 끝도 없는 악인 ‘위성락’을 찰지게 소화해내며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최근 <한겨레>와 만난 진선규는 “2017년은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진 한해였다”고 감격해했다. “늘 오디션을 봤는데, <범죄도시> 이후에 처음으로 대본 한번 읽어보라는 얘기를 먼저 들었어요. 꿈만 같았어요.”

진선규의 성공은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기뻐한다는 점이 남다르다. 그가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은 날, <범죄도시>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하해줬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연극판 친구들은 함께 울었다. 결국 보상받은 그의 노력이 “자포자기한 세상에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 같다”는 반응이 많다. “친구들이 전화해서 ‘너무 좋다야’라는 말만 반복하며 전화를 끊질 못하더라고요. 저와 상관없는 사람들조차 절 보면서 울컥하는 눈빛이 느껴질 때면 같이 울컥해져요.” 이 사람 정말 잘 살았구나 싶었다니 “착하게 살긴 했어요”라며 순둥이처럼 웃는다. 위성락 맞아?

“실제 내 성격과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게 연기하는 가장 큰 재미”라고 말하지만, 오디션을 1년에 평균 100번을 볼 만큼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집에 쌀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연기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1996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따라 진해의 작은 극단에 놀러 갔다가 골방 같은 연습실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는 걸 보고 ‘나도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왜 개그맨 하게?(웃음)” 그러나 배우로서의 성공 여부를 떠나 연기가 너무 즐거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체육교사의 꿈을 버리고, 수학능력시험이 몇달 안 남은 상태에서 진로를 바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했고, 한달 연습 뒤 합격했다. “타고난 거냐”고 물으니 “졸업 때까지 교수님한테 연기 못한다는 말을 듣고 지냈다”며 웃었다.

그는 학교를 마친 뒤 극단 생활을 하면서 기량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2004년 졸업하면서 친구들과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만들었어요. 한두달 놀다 보면 공연이 만들어질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죠. 극단 생활을 하면서 연기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어요.” 외형적인 분위기를 떠나서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쭉 따라가다 보면 바로 극중 인물이 되는 자신만의 방법도 터득했다. “‘사고의 맛’을 아는 게 중요해요. 대본을 보면서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하다 보면 그 인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대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요.”

그는 오디션에서 자꾸 떨어지는 큰 이유가 낮은 인지도 때문이라는 걸 알고 닥치는 대로 출연해왔다. 그중에서 배우 인생에 디딤돌이 되어준 작품으로 네 작품을 꼽았다. “<개들의 전쟁>은 영화를 하게 만들어줬고, <사냥>은 영화가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어요. <육룡이 나르샤>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줘서 ‘내가 배우구나’ 느끼게 됐어요.” <범죄도시>는 “기적 같은 작품”이라고 꼽았다. “사람들은 나를 ‘무명’이라고 부르지만, 전 나름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범죄도시>는 제가 가는 길의 과정에 있는 작품이고, ‘지금껏 고생했어’라고 나를 다독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선규가 이런 배우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2018년에도 지금처럼 즐겁게 열심히 일할 예정이다. 영화 <사바하>를 촬영하고 있고, 드라마 <킹덤>에도 잠깐 출연한다. 앞으로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 같은 작품이나, <파이란> <너는 내 운명> 같은 멜로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 소망은 따로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노력하고 있을 ‘수많은 진선규’들이 빛을 보는 거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배우들이 많아요. 그런 배우들한테 더 많은 기회가 갔으면 좋겠어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배우 신혜선. 와이엔케이 엔터테인먼트 제공

‘주말의 여왕’상

신혜선
당당한 여캐 활약, 시청률 ‘하드캐리’

2017년 한국 드라마에 ‘민폐 여캐’(문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여성 캐릭터를 가리키는 속어)는 드물었다.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여성 인물들이 주목받은 가운데, 누구보다 도드라진 배우가 바로 신혜선.

신혜선은 올해 상반기 <비밀의 숲>(티브이엔)에서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삼을 정도로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영은수 검사 역을 맡아, 드라마 팬들에게 ‘영또’(영은수 또라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임팩트 있게 죽어서 만족한다.(웃음)” 그가 드라마 종영 직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영또’의 죽음은 드라마의 극적 반전·충격을 만들었다. 2013년 드라마 <학교>(한국방송2)로 데뷔한 뒤, 2016년 <아이가 다섯>(한국방송2), <푸른 바다의 전설>(에스비에스) 등으로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온 신혜선의 연기 실력도 ‘임팩트’ 있게 주목받았다.

지난 9월 시작해 최근 시청률 40%를 돌파한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한국방송2)에서는 주연급 배우로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 재벌가,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 요소가 많은 줄거리지만 ‘흙수저’ 사회 초년생의 비참한 현실과 신분상승 욕망, 좌절감을 실감나게 연기해 시청자들이 극에 몰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신혜선 혼자 하드캐리(활약상이 매우 크다는 의미의 신조어)한다’는 평가가 에스엔에스(SNS)를 뒤덮었다.

신혜선은 지난해 ‘신스틸러 페스티벌’ 신인상을 받으며 “기대와 관심에 반하지 않는, 연기로 보답할 수 있는 배우가 되겠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올해 시청자들은 그의 이런 ‘약속’이 실현돼 행복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배우 설경구.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 경구가 달라졌어요’ 상

설경구
주름까지 연기 ‘지천명 불한당수’

2017년은 설경구에게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연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설경구는 올해 대종상 영화제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디렉터스컷 어워즈 올해의 남자배우상을 수상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사실 그는 2000년대 후반까지 흥행 보증수표로 통했다. 1999년 <박하사탕>으로 주목을 받은 그는 <실미도>(2003), <해운대>(2009)로 두 번의 천만 영화를 만들어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비호감’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혼·재혼 등 사생활 논란이 발목을 잡았고, <소원>(2013년) 이후 몇년 동안 이렇다 할 흥행작도 없었다.

그랬던 설경구가 올해엔 확 달라졌다. 더 정확히 말해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달라졌다. 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재기의 발판이 됐다. 변성한 감독의 에스엔에스 설화로 흥행에선 주춤했지만, <불한당>에 환호하는 관객들이 극장 대관까지 하며 단체관람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불한당원’이라 칭하는 팬들이 모이고, ‘지천명 아이돌’, ‘우리 꾸’ ‘설탕’ 등 다소 오글오글한 애칭도 붙었다. 하반기 개봉한 <살인자의 기억법>의 선전도 ‘설경구 신드롬’에 힘을 실었다.

지난 대종상 수상식에서 설경구는 “사랑하는 불한당원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에 이어 “15년 만에 이 무대에 섰다. 이전까지 한 번도 폼을 못 잡았다. 3초만 폼 잡고 내려가겠다”며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마치 자존심을 회복한 들짐승의 ‘포효’와도 같았다.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산 배우”라고 표현한 바 있다. 설경구는 다시 상승 구간에 접어들었다. 그 정점은 어디일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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