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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2 20:50 수정 : 2019.10.02 20:54

홍어 한 마리의 흑산도산 홍어회 특대. 사진 백문영 제공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홍어 한 마리의 흑산도산 홍어회 특대. 사진 백문영 제공
바람이 차가워지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유독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뜨끈하고 얼큰한 생선 국물,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국밥 같은 것들이다. 비린내 나는 해산물도 이 계절에 생각나는 먹거리 중 하나다. 역시 해산물의 계절은 가을과 겨울일까? 자고로 추운 나라에서 잡히는 생선이 맛있다. 노르웨이 등에서 잡히는 고등어나 연어가 맛깔스러운 이유다.

비릿하고 큼큼한 음식을 좋아하는 친목 모임에 해산물 맛집을 미끼로 던지면 승률이 100%인데, 그것도 날씨 덕분이다. 단체 채팅방에 ‘여러분, 홍어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반응이 뜨거웠다. ‘망원역으로 갑시다’는 답 메시지가 떴다. ‘좋아요’도 동시에 여러 개 날아왔다.

내가 주로 서식하는 곳은 중구 쌍림동. 지하철 6호선 망원역 인근까지 가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 물설고 낯선 곳에 가서 뭘 먹자고 그러느냐, 가까운 곳으로 가자.” 하지만 나의 이런 의견이 통할 리가 없었다. 단톡방의 그들은 먹기 위해선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식신’들이다. 이미 많이 먹고 많이 취하는 이들로 명성이 높다.

잠자코 그들을 따라나선 망원동 일대는 역시 낯설었다. 지난 금요일, 성산초등학교 삼거리 근처이자 망원역 인근에 도착했다. ‘불금’의 망원동 일대라! 어쨌든 모험심이 발동했다.

그 지역에 있는 ‘홍어 한 마리’. 행정구역상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식당이다. 흑산도 홍어 전문점이다. 커다란 간판 덕에 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식당은 지하에 있었다. 지하 특유의 냄새부터 생각났다. 거기다 홍어라니. 냄새 천국 아니 지옥이 펼쳐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지하에 있는 술집에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시게 된다. 과음으로 돌연사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이미 한차례 술잔을 돌려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속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뭘 이렇게 잔뜩 늘어놓고 먹는 거야.’ 하지만 한 친구가 말했다. “‘흑산도산 홍어회 특대’를 주문하면 주인아주머니가 알아서 이것저것 서비스 안주를 챙겨주신다.” 그 설명은 세상 어떤 말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메뉴 구성은 신기하다. 국내산과 외국산 홍어를 따로 구분해 파는 일반적인 홍어 전문점과 달랐다. 이곳은 흑산도산 홍어와 국내산 홍어를 구분해 놓았다. 가장 맛있고 명성이 높은 흑산도산 홍어가 비싼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산 홍어는 도대체 뭘까 궁금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묻자 수긍이 갔다. “흑산도에서 가까운 바다에서 잡히는 홍어는 따로 국내산으로 구분했다.” 진정한 음식 전문가는 식재료를 골라내는 기술부터 다르다. 그런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쳤다면 과장일까?

삭힌 정도가 중간인, 적당히 큼큼한 홍어회 한 점을 먹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구린 맛이 일품이었다. 중독되고도 남는 맛이다. 이 맛 때문에 홍어 마니아가 된다. 보드라운 돼지고기 수육 한 점과 묵은김치, 막걸리 한 사발도 냉큼 들이켰다. 새큼하고 시큼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먹을수록 손이 더 간다. 갓 삶은 갑오징어 숙회, 꼬막 무침, 새콤하고 아삭한 오이 무침은 그저 곁들인 밑반찬이었다. 반찬만으로도 술 몇 병은 마시고도 남을 거 같았다.

이 집 홍어의 힘은 회가 끝이 아니었다. 홍어애(홍어 내장 등)도 별미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살짝 얼린 홍어애에 참기름과 참깨를 듬뿍 뿌렸다. 셔벗을 먹는 듯, 젤라토(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를 먹는 듯 차갑고 물컹한 첫입, 그 뒤로 넘어오는 고소하고 녹진하고 부드러운 맛. 나를 사로잡았다. 차가운 홍어애 한 점을 먹고 톳이 잔뜩 들어간 홍어애탕을 넘기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맛은 체험이자 여행이다.

그날 밤 이후, 사람을 만날 때 기준을 새로 정했다. 묻는다. “망원역 ‘홍어 한 마리’에 가 보셨어요?” “안 가봤는데요.” “그러면 갔다 와서 얘기해요, 우리.”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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