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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8 20:14 수정 : 2019.08.28 20:26

천미미. 사진 백문영 제공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천미미. 사진 백문영 제공

‘이 시간에 왜 이것이 먹고 싶지.’ 그런 음식이 있다. 특정한 시간에 떠오른다는 점에서 묘하게 성가시지만, 또 애써 외면하고 싶지 않은 달콤하고 괴로운 그런 음식 말이다. 수상한 새벽이었다. 적당히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헛돈 쓰지 말고 집으로 가자’는 생각과 ‘그래도 딱 한 잔이 아쉽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하지만 고민은 늘 별 소득이 없다. 어차피 한 잔 더 하게 될 게 뻔하게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천미미’. “이 시각에 중국 음식을 먹을 수나 있겠느냐!” 친구가 경고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새벽녘의 신사동은 한산했다. 지금 이 시각에 술을 더 마시는 것이 옳은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일말의 죄책감조차 사라졌다. 넓은 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취객들, 각자의 속도로 취해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니 왠지 모를 동료애가 생겼다.

천미미는 무척 독특한 중식당이다. 바오샤(멘보샤), 어향동고, 유린기 같은 제대로 된 중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인데도, 새벽 5시까지 문을 연다. 밤 10시 이후에는 아예 ‘중식 포차’ 메뉴를 따로 낸다. 딱 한 잔이 아쉬운 취객을 위해 음식의 양을 줄이고, 가격도 한층 낮춘 모양새다.

천미미. 사진 백문영 제공

“일단 속을 풀고 시작하자.” 친구의 의견을 받들어 얼큰한 짬뽕탕,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멘보샤와 탕수육, 어향가지를 주문했다. ‘배부르니 간단히 먹고 일어나자’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뜨끈하고 매콤한 짬뽕탕을 한 수저 뜨자마자 “읔”하는 아저씨의 해장국 리액션이 나왔다. 차갑고 얼큰하고 구수하기까지 한 옌타이고량주 한 잔을 홀짝인 뒤 바삭한 멘보샤를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기름기, 머리끝까지 퍼지는 취기! 전분을 넣어 끈적거리는 어향가지를 떠먹으니 이곳이 광둥인, 홍콩인지, 서울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시간에 먹는 중식이 진리다.” 쓸데없는 말을 친구에서 주절거리며 또 한 잔, 어떻게 취했는지도 모르게 먹고 마셨다. 와인과 소주를 늘어놓고 마셔대는 취객들의 모양새가 정겹고 반가웠다. 와인을 가져가면 무료로 잔을 제공하는 ‘콜키지 프리 제도’까지 운영한다고 하니, 이곳이야말로 진짜 술꾼의 성지가 아닌가!

한껏 먹고 마시고 나오는 길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지만 즐거웠다. ‘프로 술꾼’이 되어가며 배운 진리가 많다. 오랫동안 문을 여는 맛있는 술집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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