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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6 10:46 수정 : 2018.09.06 10:55

진로집의 보쌈. 백문영 제공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진로집의 보쌈. 백문영 제공
약 2년 전 그리스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리스의 수많은 와이너리와 다채로운 포도 품종, 놀라운 맛과 향의 와인을 접하면서 와인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동안에는 먹고 마시기에만 바빴던 와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매년 대전에서 열리는 ‘대전국제와인페어’에 갈 기회가 마침 생겨 열차 티켓을 끊었다. 전 세계 1만여 종의 와인을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는 와인 축제이자 폭넓은 공부의 장이다. 세계의 권위 있는 와인 전문가들이 모인다. 훌륭한 와인을 골라 메달을 주는 ‘아시아 와인 트로피’와 평소 만나기 힘든 전문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아시아 와인 컨퍼런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소믈리에를 뽑는 ‘국가대표소믈리에대회’까지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와인 애호가로서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대전으로 내려온 것까지는 좋았다. 대전에만 도착하면 어디서든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처음 온 도시의 사람 많은 터미널에서부터 기가 죽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만있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하겠다’는 어설픈 위기감마저 들었다. 충동적으로 내려온 탓에 한 끼도 먹지 못한 터였다. 북적이는 인파에 눈은 어지럽고 머리는 핑핑 돌았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대전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로집의 ’두부와 오징어 두루치기’. 백문영 제공
그가 대전 중구에 있는 ‘진로집’으로 데리고 갔다. 진로집은 두루치기 전문점이다. 이미 여러 미디어에 나온 유명할 대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런 집일수록 지나치기 쉽다.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 벽이 정겹다. 가장 유명한 메뉴라는 ‘두부와 오징어 두루치기’와 보쌈. 대전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원 막걸리’도 주문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밀 막걸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밀 특유의 텁텁함 대신 알싸하고 부드러운 맛과 깔끔한 목 넘김이 새롭다. ‘평범한 두부조림이겠지’라는 생각도 잠시,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투박하게 잘라놓은 듯한 두부 두루치기가 등장했다. ‘한국식 마파두부가 따로 없다’고 중얼거리며 두부를 입에 넣자, 맵고 알싸한 고춧가루의 향과 부드러운 두부의 식감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바로 삶아 나오는 보쌈 역시 수준급이다. 두부 한 입, 보쌈 한 점을 우물거리다 막걸리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그야말로 완벽한, 축제의 시작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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