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24 09:57
수정 : 2018.05.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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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타이완’의 지파이와 곱창 국수.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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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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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타이완’의 지파이와 곱창 국수.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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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남동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를 줄 정말 몰랐다. 신촌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는데도, 연남동 방향으로는 발길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연희동보다 멀고 서교동보다 외진 심리적 거리 때문이었을까? 연남동 ‘연트럴파크’를 기준으로 좌우 앞뒤로 각종 레스토랑이 꽉꽉 들어찬 것을 보고 상전벽해의 기분을 느꼈다면 너무 과장하는 걸까?
예로부터 연희동과 연남동은 ‘화교 중국집’의 성지로 불렸다. 1만원만 있으면 간단한 요리 몇 가지와 소주까지 마실 수 있다는 ‘도시 전설’까지 들려왔다. 싸고 허름하고 푸짐한 화교 음식점 옆으로 세계 각지의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들어선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차례일 지도 모른다. 태국, 인도네시아, 이탈리안, 프렌치 레스토랑은 물론 일식 라멘과 막걸리 주점까지. 선택지는 다양하고 백화점 푸드 코트에 들어선 듯 정신은 아득하다.
길게 줄을 늘어선 유명 레스토랑은 어쩐지 피곤하고, 그래도 평소에 즐겨 먹지 않는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신촌에서 연남동까지 걸어 지칠 대로 지친 차에 ‘대충 고기나 먹을까?’ 자포자기하는 심정까지 들었다. 허름한 고깃집과 국밥집, 어쩐지 수상한 국적 불명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이, 기적처럼 병아리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리틀 타이완’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 옆에는 ‘대만 곱창국수’, ‘지파이’ 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구워 먹기만 하던 곱창을 국수로 말았다고? 지파이는 도대체 뭐지? 궁금한 마음에 계단을 타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흔히 아는 ‘동남아풍’ 식당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심심하고 단조로운 인테리어에 갸웃하던 찰나, 옆자리의 중국인 학생 무리가 ‘소맥’을 말아먹는 장면을 보고 느낌이 왔다.
소금에 절인 닭고기를 얇게 펴서 ‘특제 소스’를 입혀 바삭하게 튀겼다는 ‘지파이’와 ‘대만 마라 어묵탕’, ‘곱창 국수’를 주문했다. 후추 맛과 매운 후추 맛, 치즈 맛으로 구성된 지파이 세트는 돈가스인 듯, 치킨가스인 듯 낯설지 않은 모양새다. 콤콤한 기름맛 대신 매콤하고 알싸한 튀김옷과 촉촉한 닭고기의 풍미가 제대로 어우러진다. 커다란 냄비에 담겨 나오는 대만 마라 어묵탕은 소주 안주인 듯, 맥주 안주인 듯 칼칼하고 개운하다. 중국식 훠궈의 강렬하고 매운 마라 맛을 기대하면 다소 심심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수다 떨며 간간이 떠먹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드디어 대망의 곱창 국수가 나왔다.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이 동동 떠 있는 곱창 국수는 얼핏 보면 일본식 돈고츠라멘인 듯, 순댓국인 듯 뽀얗다. 중면 굵기의 국수를 호로록 불어먹으면 고추의 매운맛, 돼지고기 육수의 진하고 고소한 맛, 곱창 특유의 진한 내장 풍미가 한꺼번에 느껴진다.
외국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도, 상황도 여의치 않을 때는 낯선 동네로 훌쩍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만큼 ‘여행’하기 좋은 도시가 또 있을까? 길지 않은 인생,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아직도 서울은 낯설고 신기하다. 동네마다 온도 차는 극명하고 보는 재미, 먹는 재미는 그 이상으로 다채롭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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