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F-15K의 당당한 위용.
|
“눈으로 쳐다 보면 장착미사일도 함께 자동조준”
한국 공군이 차기 전투기로 선정한 F-15K 전투기 3, 4호기 2대가 지난 7일 경기도 성남 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생산된 F-15K 1, 2호기는 장비 정상작동 여부를 판단하는 시험을 계속하고 있어, 나중에 도착할 예정이다. F-15K는 미 공군의 주력 전투기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을 기본 모델로 해, 일부 성능을 업그레이드했다. 한국 공군의 최신예기 F-15K의 성능을 5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군사작전의 요체인 ‘발견-결심-공격’ 가운데 ‘결심’은 최종적으로 사람, 전투기에서는 조종사가 하게 된다. 조종사의 판단이 정확해야만 마지막 단계인 공격에서 기대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F-15K 조종사 이영수 소령(38)은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있으면 판단의 연속이다”라며 “전투기 성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결국에는 조종사의 기량이 전투력과 직접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비행 상황과 임무에 따라 적절한 탐지장치를 가동하고, 필요한 기동을 선택해야 하며, 알맞은 공격형태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물론 실제 비행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북한 조종사들의 경우, 거의 비행훈련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글쓴이는 몇 차례 공군 작전사령부의 중앙방공관제소(MCRC)를 방문했지만, 북한 전투기들이 북한 상공에 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군 관계자들도 “북한 상공 전체에 비행 물체가 떠 있는 것은 가끔 베이징을 오가는 민항기나 헬리콥터 1∼2대 정도일 뿐, 전투기가 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북한 영공을 지키는 초계비행도 없다. 극심한 유류난 때문이다. 기량면에서 북한 조종사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남쪽 상공에는 군용기와 민항기들의 항적으로 북적거린다. 훈련비행 초계비행 등에 나선 군용기만도 수십대가 떠 있다.
북 상공엔 전투기 훈련 거의 없어, 기름부족 북 공군 주로 사격훈련 북한 조종사들은 지상에서 무엇을 하는가. 지난 1996년 미그기를 몰고 남쪽으로 넘어온 북한군 이철수 대위는 당시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와, “지상에서는 조준기를 겨누는 연습을 하기 때문에 사격술은 상당하다”고 자랑했다. 식사 시간에도 상관의 이마를 향해 손가락을 오므려 방아쇠를 당기는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물론 상관도 이런 사격술 훈련(?)에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더로 가시권 밖 거리(BVR, Beyond Visual Range)의 상대방을 탐지하고, 100㎞가 넘는 거리에서 미사일로 공격하는 시대에 이런 훈련이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 F-15K에는 조종사의 결심을 도와줄 장비가 많다. 그 가운데 헬멧장착시현장치(JHMCS, Joint Helmet Mounted Cueing System)는 ‘발견-결심-공격’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어, 조종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표적 장비다. 조종사가 헬멧을 쓰게 되면 헬멧 앞부분에 고글처럼 붙어 있는 시현기(바이저)에 목표 포착 정보 및 비행 속도, 고도 등 각종 비행 데이터가 나타난다. 조종사는 전투기를 조종하면서 주변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다. 헬멧장착시현장치는 미 공군의 F-15E에는 없는 장치다. 그동안에는 헬멧에 많은 전자 부품들을 설치하느라 무게 때문에 실용화되지 못했다. 보잉사가 이 장치의 경량화에 성공하면서, F-15K에 처음으로 본격 장착됐다. 미국은 나중에 F/A-18, F-22 기종에 이 장치를 장착할 계획이다.
관람자들이 F-15K 조종석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
|
헬멧장착시현장치, 조종사가 목표물 쳐다보면 미사일의 탐색기도 함께 조준 이 헬멧의 더 큰 특징은 컴퓨터를 통해 미사일의 탐색기(Seeker)와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종사가 목표물을 쳐다보면, F-15K에 장착된 미사일의 눈(탐색기)도 함께 움직여 목표물을 겨누게 된다. 말하자면 탐지와 동시에 자동 조준이 이뤄지는 셈이다. 보통 미사일로 상대방을 공격할 경우에는 미사일의 자이로와 목표물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항공기를 급격하게 움직이는 기동이 필요하다. 더구나 전투기가 가시거리에서 맞딱뜨릴 경우 서로 상대방을 조준하거나 조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조종사에게 9배의 중력(9G)을 안겨줄 정도의 고기동을 해야 하지만, 헬멧장착시현장치와 미사일의 탐색기가 있으면 이런 과정이 불필요해진다. F-15K에서 헬멧장착시현장치와 연동하여 쓰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AIM-9X 미사일이다. AIM-9X 미사일도 F-15K 전투기를 제외한 다른 F-15에는 없다. 원래 AIM-9 계열의 미사일을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이라고 부른다. 1950년대에 개발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은 전투기의 엔진 배출구에서 나오는 열선(적외선)을 추적하는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전투기에서 발사된 뒤 스스로 적외선을 추적해 목표물을 따라가기 때문에, 전투기는 쏘고서 자리를 벗어날(fire and forget) 수 있어서 각광을 받았다. 이 미사일은 그동안 적외선 탐지기의 감지력을 증가시켜, 상대편 항공기의 후방 공격은 물론 전방 공격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공격 각도는 25˚에 불과했다. AIM-9 미사일의 최신 버전인 AIM-9X 미사일은 적외선 탐색기의 유도에 따라 발사 직후 90도로 급선회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시계내(WVR, Within Visual Range) 전 범위의 목표물에 대해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어 4세대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불린다. 옛소련은 1980년대 후반에 이런 헬멧조준기와 4세대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AA-11 아처를 기동성이 우수한 미그-29와 수호이-27 전투기에 배치했다. 미그 29 전투기는 북한도 10여대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장비 때문에 단거리 공중전에서는 미 전투기가 구소련 전투기에 밀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앞좌석 3개 화면, 뒷좌석 4개 화면으로 각종 정보 보여줘 헬멧장착시현장치와 미사일의 연동은 ADCP(Advanced Display Core Processor)가 맡고 있다. F-15K 항공전자 장치의 핵심을 이루며, F-15K의 중앙 컴퓨터 및 디스플레이 프로세서 역할을 맡는다. F-15K 제작사인 보잉은 “이 프로세서는 처리 성능면에서 이전 F-15 전투기에 있던 중앙 컴퓨터보다 10배에 가까운 성능을 갖고 있다”며 “미 공군은 기존 F-15E 기종의 컴퓨터를 ADCP로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F-15K를 조종한 이 소령은 “F-15K와 미 공군 F-15 프로세서의 처리 속도 차이는 펜티엄Ⅳ와 펜티엄Ⅰ의 차이만큼 느껴졌다”고 말했다. ADCP는 또 조종석에 있는 화면에 자신의 비행 상태와 미사일 폭탄 등 무장상태, 상대방 전투기, 지형 등 주변 상태를 보여 준다. F-15K 전투기의 앞좌석에는 3개의 화면, 뒷좌석에는 4개의 화면이 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에는 온갖 둥근 바늘형 계기판이 복잡하게 조종석 앞면을 차지하면서 하나의 계기판에 하나의 정보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F-15K의 화면에는 다양한 정보가 디지털로 처리되면서 하나의 화면에 나타나, 조종사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F-15K의 또다른 특징은 ‘데이터 링크 16’이다. 이는 함께 작전을 나간 전투기 사이, 항공기와 지상 사이, 항공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사이 등에서 각자가 수집한 정보와 각자의 무장, 연료 등의 정보를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통합 전술정보 분배체계(JTIDS, Joint Tactical Information Distribution System)다. 데이터 링크를 사용하면 F-15K 전투기는 다른 항공기와 데이터를 공유하게 돼 상황경계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훨씬 효과적인 공대공 작전을 진행할 수 있다. F-15K 조종사 이 소령은 “데이터 링크의 편리함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말했다. 화면에서 지정만 하면 명령 및 통제가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일일이 무전기를 조작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음성으로 전달할 경우 전파방해를 받으면 전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데이터 링크는 짧은 시간에 비화처리된 디지털 통신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보다 안전하고 명확하게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이다.
공중 급유중인 F-15K.
|
F-15K, 조기경보기서 습득한 정보 데이터링크로 수신 뒤 전투 데이터 링크의 장점은 은밀성에도 있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조기경보기로 해군 E-2C 호크아이 28대, 공군 E-3 AWACS 7대, E-8 Joint STARS 2대 등 37대를 운용했다. 이들 조기경보기는 300∼700㎞ 떨어진 곳의 정보를 습득해 대기 중인 F-15 등 전투기들에게 알려주었다. 이들 전투기는 자신들의 레이더를 끈 채 목표물에 은밀히 접근해 갑자기 타격을 가했다. 걸프전 기간 다국적군이 103대의 이라크 항공기를 파괴한 전과를 올린 것도 데이터 링크의 역할이 컸다. 이밖에 F-15K에는 현대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관성항법장치와 위성항법장치(INS/GPS)가 있다. 이륙한 조종사는 운항 목표지점을 비행기 컴퓨터에 입력해 두면, 지난 회의 미사일 부분에서 설명했던 대로 비행기가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기 때문에 조종사의 노력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 조종사는 본격 전투가 벌어지기 이전에 전투력 손실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게 된다. F-4 팬텀 전투기에는 관성항법장치만 있으나, F-16 단계에 오면 위성항법장치가 추가되면서 서로 연동돼 보다 정확한 목표지점으로 운항할 수 있다. 또 전투기에 위협이 되는 상대편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SAM), 대공포 등의 화력통제 장치는 대부분 레이더를 사용한다. 이들 장치에서 발사되는 레이더 전파를 탐지하여 위험을 알려주는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로 F-15K는 ALR-56C(V)1을 장착하고 있다. 기존 F-15의 ALR-56C보다 탐지거리가 길어졌다. 정확한 거리는 기밀사항이다. F-15K는 이들 전파의 발신지를 향해 방해 전파를 송신하여 전투기로부터 반사된 반사파를 방해 전파 속에 묻히게 하는 재머(Jammer)로 ALQ-135M를 갖추고 있다. 또한 F-15K에는 F-16에 도입된 호타스(HOTAS, Hands-on Throttle and Stick) 컨트롤러가 있다. 조종사는 무기, 레이더, 항공 전자 장치 등을 포함한 항공기 조작을 조종간에서 손을 떼거나 계기판에 손을 뻗을 필요 없이 손가락만 간단하게 움직여 할 수 있다. 전투기의 고기동으로 조종사에게 엄청난 중력이 가해지는 때에는 매우 필요한 장비이다. <끝> <한겨레> 정치부 김성걸 기자 skkim@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