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홍콩 시민집회 1박2일 르포
“우린 지도부 없다…정부가 자극”
곳곳서 집회 뒤 모여 도심 행진
경찰, 푸른색 물대포·최루탄 쏴
시위대는 화염병 던지며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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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가 13주차로 접어든 가운데, 시위대가 1일(현지시각) 홍콩국제공항에서 카트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교통 방해 시위에 나서고 있다. 당국의 강경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2일부터는 의료·항공 등 21개 업종 종사자들의 총파업과 10개 대학의 동맹휴업까지 예고돼 있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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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웡이 체포됐다. 그는 2014년 ‘우산혁명’ 당시 17살 나이에 시위대 맨 앞에 섰다. 그의 동료 2명과 현직 입법회(국회 격) 의원 3명도 잇따라 체포됐다. 경찰은 집회를 불허했고, 주최 쪽도 고심 끝에 취소 결정을 내린 터다. 하지만 어느 것도 ‘자유를 향한’ 홍콩 시민들의 자발적 집회를 막지는 못했다.
8월30일 오후 도착한 홍콩은 잔뜩 움츠린 듯 보였다. 저녁 7시께, 홍콩섬 중심가 지하철 센트럴역 부근 최고항소법원 앞 작은 광장에서 잔잔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교계에서 마련한 ‘홍콩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 자리다. 기도문을 적어 붙일 포스트잇을 나누던 유아무개(28)는 “집회가 취소돼 속상하고 조금 분하기도 하다. 내일 홍콩에 평화가 있기를 기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법원 뒤쪽 차터가든은 홍콩 시민사회 연대체 민간인권전선이 8월31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던 곳이다. 집회는 취소됐지만, 수백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경찰의 과도한 최루탄 사용을 규탄하는 ‘전야제’를 하고 있었다. 수의사 콘웰 수(42)는 “정부가 시민들을 일부러 자극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길 건너 전몰자 위령비 앞에도 검은 옷 차림의 시민 수백명이 모였다. 시위 도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부상당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침묵시위’다. 차터가든 인근 3곳에서 나눠 열린 3가지 집회는 홍콩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헝컹얀, 까야오. 헝컹얀, 까야오.”(홍콩인 힘내라) 다음날인 31일 낮 12시를 갓 넘긴 시간, 도심 완차이 지역의 사우스혼 구장에서 함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교계가 마련한 ‘기도회’다. ‘정치집회’가 불허될 때면, 교계가 나서 사전 허가가 필요 없는 ‘종교집회’를 여는 게 관례로 굳어졌다. “홍콩은 우리 집이고, 정의가 우리 종교다.” 반송중 집회에 6번 참석했다는 회사원 청 위옌(43)이 힘주어 말했다.
십자가를 앞세운 시민들이 인도를 따라 퀸즈웨이로 행진에 나섰다. 미리 기다리던 시민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행렬은 갈수록 불어났다. 주변 건물 안 곳곳에 진을 치고 있던 검은 옷 차림의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로 연신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퀸즈웨이 플라자 2층에서 만난 케니 수(24)는 “유명인사를 체포하면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나? 주최 쪽이 취소한다고 집회를 못할 줄 알았나? 애초 우리에게 지도부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반송중 시위의 특징을 실감할 수 있다.
이날 집회는 2014년 우산혁명을 촉발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이른바 ‘8·31 결정’ 5주년에 맞춰 계획됐다. 당시 중국 당국은 홍콩 반환 때의 약속을 저버리고 2017년 행정장관 선거도 간선제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79일간 이어진 도심 점거 시위는 성과 없이 막을 내렸고, 이후 홍콩 사회는 긴 침묵에 들어갔다. 당국의 일방적인 ‘범죄인 인도 조례’ 추진은 5년의 침묵 속에 켜켜이 쌓인 시민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당국이 불허한 31일 집회는 석달이 되어가는 반송중 시위의 앞날을 예측하는 시금석이었다.
어느새 차터가든 부근에 도착한 행렬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일부는 차터가든으로 갔다. 일부는 언덕길을 올라 정부청사 앞으로 다가섰다.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병력이 그들을 막아섰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대혁명, 광복홍콩”, “홍콩인, 힘내라” 함성이 다시 메아리쳤다.
저만치 캐리 람 행정장관의 공관 앞도 중무장한 경찰이 지키고 있다. 굵어진 빗줄기 속에 잠시 야유를 퍼붓던 시민들이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오기 시작한다. 흰색 십자가가 박힌 붉은색 헬멧을 쓴 간호대생 버니크 라이(20)는 6월 말부터 빠짐없이 자원활동을 나오고 있다며, “합법 집회 때는 다치는 사람이 적은데, 오늘은 불허 통보가 내린 상태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행렬이 다시 차터가든 앞으로 내려섰다. 어느새 불어난 인파로 인근 도로까지 사람의 물결로 출렁였다. 지하철 센트럴역에서 출발해 홍콩역을 지나 성완역 부근까지 흐르는 ‘물처럼’ 행진이 이어졌다. 지하철역 3~4개 구간에 걸쳐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나던 시민들이 응원의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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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현지시각) 오후 홍콩 정부청사 부근에서 경찰이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대를 향해 파란색 염색제를 섞은 물대포를 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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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경찰이 거리에 배치됐다는 소식은 오후 5시께 전해졌다. 이미 일부 시위대는 입법회 주변으로 몰려간 상태다. 이윽고 첫 최루탄이 발사됐다. 검은 복면에 노란색 안전모를 갖춰 쓴 청년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중국 중앙정부 연락사무소(중련판) 앞을 지키던 물대포 차량이 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날 홍콩 경찰당국은 물대포 살수 때 시위 주동자를 가리기 위한 푸른빛 염색제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도심 곳곳에서 최루탄 연기가 피어올랐고, 완차이 경찰청으로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늦은 밤까지 진압 경찰과 시위대가 공방을 이어갔다. 빅토리아공원 부근에선 진압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 경고 사격을 하기도 했다. 지난 25일에 이어 사상 두번째다. 카오룽반도 쪽으로 넘어간 시위대도 침사추이-조던-몽콕-프린스에드워드 등으로 북상을 계속하며 진압경찰과 맞섰다.
밤 10시가 가까워지자 경찰의 공세 수위가 높아졌다. 시위대의 저항도 더욱 거세졌다. 경찰은 ‘랩터스’로 불리는 체포전담조를 투입했으며 이들은 지하철 몽콕역과 프린스에드워드역 승강장까지 진입했다. 거침없이 전통차 안으로까지 뛰어든 경찰은 최루액을 뿌리고 곤봉을 휘둘렀다. 이곳에서만 40명이 체포됐다. 현지 매체 <나우뉴스>가 생중계한 현장 화면을 보면, 중무장한 채 한밤중 거리를 떼 지어 내달리는 경찰의 모습이 흡사 ‘점령군’을 닮아 있었다.
1일 오후 홍콩 공항 인근에선 수백명의 시위대가 집결했으나 공항 내부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위대의 접근을 막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가 운행을 멈추자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가 마비되기도 했다. 수천명으로 불어난 공항 근처 시위대들은 이날 밤 지하철 텅청역으로 이동해 지하철 운행 중지를 시도했다.
한편, 홍콩 내 10개 대학 학생회는 이달 2일부터 2주간의 동맹 휴학을 예고했으며, 2∼3일에는 의료, 항공, 건축, 금융, 사회복지 등 21개 업종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총파업도 예정돼 있다. 집회의 자유는 기본권이다. ‘불허’한다고 모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자유’일 수 없다. 홍콩 시민들이 이를 입증했다.
홍콩/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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