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박닌 삼성전자 공장 노동자들이 지난 5월14일 오후 오토바이를 타고 공장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다. 박닌/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겨레>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찾았다. 2만여㎞,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누비며 129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이 삼성전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지만,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10명의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고, 20여명의 국제 경영·노동 전문가를 만났다. 70일에 걸친 글로벌 삼성 추적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당장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5차례로 나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삼성은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시아 청년들을 쥐어짜고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청년들은 정규직의 꿈을 좇아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20대 중반이 되면 일터에서 쫓겨났다. ‘초일류 기업’을 자부하는 삼성의 노동조건은 ‘생존의 최저선’이었다.
<한겨레>가 인도와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삼성전자 공장을 취재한 결과, 현지 법과 글로벌 기준에 어긋난 불법과 편법 행위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현지 공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직접 겪은 최저임금법과 견습법 위반, 강제노동 및 부당해고, 언어폭력 등에 대해 증언했다.
수당 줄이려고 ‘쪼개기 계약’…최저임금법도 위반
인도네시아 치카랑 삼성전자 공장에서는 6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이 빈번했다. 7~12월까지 성수기에 노동력을 집중해서 활용하고, 1년에 한번 상여금처럼 주는 종교휴일수당 지급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장 노동자들은 “다른 외국계 기업은 1년 단위 계약이 일반적인데 유독 삼성만 6개월 이하의 짧은 계약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치카랑 공장은 한해 180만대 휴대폰과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내수형 공장이다.
공장 앞에서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들은 “기술직 엔지니어와 관리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산직이 단기 계약직”이라고 말했다. 노동법상 계약직은 ‘임시적 성격의 업무’만 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계약직은 정규직과 똑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었다. 디브이디(DVD) 생산라인에서 ‘6개월+6개월’ 계약을 맺고 일한 헤르핀(가명·23)은 “라인에서 제품을 생산했다. 물량이 많을 때는 매일 초과근무를 했고, 주말에도 일했다. 지쳐서 쓰러진 여성 노동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삼성에서 일할 수 없었다. 헤르핀은 “나이가 많아서 계약 연장이 안 됐다. 23살은 삼성에서 일하기 많은 나이”라고 했다.
현장 노동자와 직업학교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노동자들은 직업학교를 거쳐 삼성에 입사해 계약직으로 1~5년 일하다 계약 해지된다. 20대 중반의 계약직들이 10대 후반의 계약직으로 대체되는 구조였다. 인구 세계 4위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최저임금법도 위반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치카랑 공장에서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은 산업별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전자산업 노동자는 산업별 최저임금(월 463만2985루피아, 약 38만6천원)을 적용받는데, 삼성은 정규직한테만 이를 적용하고 계약직에겐 이보다 낮은 지역별 최저임금(월 414만6126루피아, 약 34만5천원)을 지급했다. 인도네시아 금속노동자연맹(FSPMI)은 파나소닉과 산요 같은 외국계 전자회사들은 비정규직한테도 산업별 최저임금을 지급하는데 삼성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치카랑 공장에서는 2011년 전후 수백명의 파견(아웃소싱)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에 투입돼 위법 논란이 일었다. 성수기에 하루 4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해도, 2시간의 수당만 인정해줘 노동자들의 반발을 산 적도 있었다.
초일류 기업의 최저선, ‘견습공 돌려막기’
견습법(도제법)의 허점을 노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년 노동을 착취하는 사례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취재 지역 중 견습제를 가장 악랄하게 활용하는 곳은 인도 노이다 공장이었다. 2020년이면 삼성이 한 해 생산하는 5억3천만대의 스마트폰 중 1억2천만대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던 삼성의 핵심 공장이다.
인도에서는 직업교육과 실습을 목적으로 견습공을 허용한다. 그러나 노이다 공장에서는 실습이 아니라 제품 생산을 위한 실전에 견습공을 투입했다. 인도의 견습법은 견습공에게 업무량에 근거해 급여를 지급하거나 생산량 기반으로 장려금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징역 6개월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인도네시아 브카시에 있는 한 직업학교 정문. 이 학교를 나온 많은 학생들이 삼성에 계약직으로 취업한다. 브카시/김도성 <한겨레티브이> 피디 kdspd@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전·현직 견습공들의 말을 종합하면, 제조 공정에 따라 10~40%가 견습공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직업학교에 다니는 10대 후반 학생부터 대학 저학년인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노이다 공장에서 피처폰(2G폰)을 조립한 견습공 타루(가명·21)는 “생산량 압박이 정말 심했다”고 말했다. 피처폰의 경우 하루 1600개, 4G 스마트폰은 800개가 할당됐는데, 목표량을 채울 때까지 초과근무를 했다는 것이다. 견습법은 견습공의 초과근무를 금지한다. 3개월가량 견습공으로 일한 주놉(가명·21)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때마다 관리자에게 “일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두라”는 폭언을 들었다고 했다. 몸이 아파서 휴가를 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정당한 휴가 사용을 막는 것도 불법이다.
인도 견습공들은 9천~1만루피(약 15만~17만원) 월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준숙련노동자 기준 월 최저임금 1만5400루피(약 26만2천원)에 한참 못 미친다.(인도에선 숙련도에 따라 최저임금이 달라진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고문’으로 ‘1+1년’ 견습을 한 노동자도 많았지만, 대부분 정규직이 될 수 없었다. 인도에서는 계약직 고용 2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이나 계약을 해지해야 하지만, 삼성은 작업 분야를 바꾸는 편법으로 견습공을 재고용했다. 인도 노동자교육센터는 삼성전자 견습공의 정규직 전환율이 한 자릿수라고 추정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삼성전자 공장 직원들도 “견습공들이 생산라인에 투입됐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1년 미만 단기 고용이어서 정확한 인원수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이 나라들 역시 견습공을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인도네시아 노동단체 립스(LIPS)의 파흐미 소장은 “다른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도 삼성의 노동 착취는 매우 악랄하다. 해외 공장이 있는 지역에서 인턴십과 아웃소싱 같은 비정규직 노동력을 심하게 착취한다. 삼성의 이런 나쁜 전략을 다른 기업들이 따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아시아 청년들에게 가혹한 노동조건을 제공하고 있었다. 2016년 삼성이 발표한 ‘이주노동자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해외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겠다는 약속과 ‘국제연합(UN) 기업의 인권 이행 지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 ‘국제노동기구(ILO) 노동자 기본권 선언’ 등 국제 규범을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선언에도 위배된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옥기원 이재연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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