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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2 18:23 수정 : 2019.06.13 09:25

김종구
편집인

여야 간의 날 선 공방이 잠시 숨을 멈추었다. 서로 얼굴도 마주치려 하지 않던 정치인들이 여기저기서 따뜻한 악수를 나눈다. 막말 전문 제1야당 대변인 입에서도 모처럼 곱고 순한 단어들이 나왔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별세 이후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다. “국민의 사랑과 화합”을 호소한 고인의 유언이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 온 나라가 모처럼 이념과 정파, 종교를 넘어서 하나가 된 듯하다.

이런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한국당 사람들의 추모 행렬이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애도의 진정성, 추모의 경건성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리를 맴돈다.

“고인에 대한 애도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애정 행위”라는 말이 있다. 슬픔=애정이다. 슬픔의 크기는 고인에 대한 애정의 용량에 비례한다. 감정의 깊이를 측량해 숫자로 표시할 길은 없지만 자유한국당 사람들의 애정은 너무나 얇고 헐거워 보인다. 사실 그들은 고인과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애정은커녕 ‘배척과 증오’를 일삼아온 세력의 충실한 후계자들이다.

자유한국당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라도 있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색깔론만큼은 접어야 한다. 고인 부부를 평생 괴롭힌 단어는 ‘빨갱이’였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빨갱이 대신 ‘종북’이라는 단어를 무기 삼아 여전히 정치적 마녀사냥을 일삼고 있다. 이 땅에서 색깔론이 영원히 사라지길 바라는 고인의 간절한 소망은 그들에게는 쓰레기통에 처박을 휴짓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니 추모의 진정성을 어찌 인정하겠는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살아 있는 이들의 가슴에 기억으로 남는다. 그 기억은 영롱한 별빛이고 보석이다. 추도 행위란 한 인간의 ‘영원한 안식’을 마주한 산 자들의 ‘새로운 깨어남’이다. 이희호 여사 별세 뒤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의 실현을 향한 새로운 각성과 다짐이 이어지는 것도 그런 맥락일 터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고인이 남긴 어떤 가치를 돌아보고 있는가.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고인의 삶을 건조하게 설명한 뒤 “민주주의, 여성, 그리고 장애인 인권운동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열정과 숭고한 뜻을 기린다”고만 돼 있다. 그냥 시늉에 그친 알맹이 없는 추도 성명이다. 그 사정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요즘 자유한국당은 입만 열면 독재, 언론탄압 등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희호의 민주주의’ 앞에 ‘황교안의 민주주의’를 들이대는 것은 얼마나 가소롭고 얼토당토않은 일인가. ‘이희호의 독재타도’와 ‘나경원의 독재타도’를 어찌 같은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가. 자유한국당도 차마 고인 앞에서 이런 단어들을 입에 올리기는 스스로 민망했을 터이다.

자유한국당이 고인을 추모하며 ‘평화’를 전혀 입에 올리지 않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말은 그 자체가 인식의 거울이다.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한반도 평화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해온 사람들로서는 평화는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단어일 것이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의 추도 멘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한 “이희호 여사는 여성이 가진 포용의 미덕을 우리 정치권에 보여주셨다”는 발언이다. 그 말이 감동으로 다가와서가 아니라 실소를 유발해서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국회 보이콧을 하고 있다는 그가 하필이면 어울리지 않게 “포용의 미덕”을 언급했을까. 그런 말을 하려면 스스로 ‘포용의 정치’를 하겠다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일반적 상식인데 그런 상식마저도 배반한다.

그래서 결국 자유한국당의 추도 멘트에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라는 흔한 표현도 없다. 그냥 영정 앞에 형식적으로 고개는 숙일지언정 고인이 추구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도, 그 뜻을 따를 생각도 없다는 표시다. 성찰도 다짐도 없는 추모는 진정한 추모가 아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된 뒤 “담당할 일이 무엇인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염두에 둔 ‘담당할 일’이라는 것은 아마 추모행사의 모양 만들기를 하는 형식적·의례적 행동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시점에 제1야당 대표가 담당할 일이 아니다. 장례위원회 고문도 됐으니 우선 고인의 유지부터 가슴을 열고 찬찬히 되새겨보길 권한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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