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05 18:26 수정 : 2019.11.05 18:4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삼성전자가 1일 창립 50돌을 맞았다. “우리의 기술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자.”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의 메시지를 기대했지만, 삼성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50년을 열기 위한 비전은 찾기 어려웠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1983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반도체 1위 기업의 기틀을 닦았다.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는 ‘신경영선언’을 통해 ‘글로벌 삼성’으로 변모시켰다. 삼성 계열사의 간부는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면서 사실상 총수 지위에 오른 뒤 5년 반 동안 자신만의 경영철학이 담긴 비전을 내놓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역대 삼성 총수들이 과감한 혁신과 결단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이끌었던 전통이 희미해지는 데 대한 우려는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뇌물공여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의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1993년 당시 만 51살인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살이 된 이재용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건희 회장이 아직 살아 있는 만큼 삼성의 총수는 이 부회장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자연인 이건희’는 살아 있지만, ‘경영인 이건희’의 시대는 이미 5년 반 전에 끝났다. 최근 5년간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논란을 시작으로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뇌물 공여, 노조파괴 공작,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대형 사건이 끊이지 않다 보니,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요즘 재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수석부회장이다. 악전고투하는 이 부회장과 대비된다. 정 수석부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회장의 와병으로 지난해 9월부터 총수 구실을 하며 사업구조 개편, 조직 쇄신, 일하는 방식 변화, 인사 쇄신 등 쉼 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10월23일 직원과의 대화에서는 “지난 5~10년간 정체됐다”며 “지금까지 변화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미래 사업방향에 대해서도 “자동차를 만드는 비중은 50%로 줄이고, 30%는 개인용 항공기, 20%는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비전을 내놨다. 현대차 임원은 “가장 보수적이던 그룹이 가장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웃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1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만성적 공급 과잉과 미래차시대 대처를 두고 어려움을 겪어온 현대차로서 새 도전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성공 여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 돌파에 도전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주위에서도 호평이 이어진다. 10대 그룹의 임원은 “재벌 3세들 사이에서 일종의 ‘롤모델’로 꼽힌다”고 귀띔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사석에서 “총수가 그렇게만 하면 국민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고 반겼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은 2001년 첫 임원을 맡은 뒤 18년간 ‘온실 속의 화초’라는 이미지가 고착됐다. 삼성의 전직 임원은 “단 한번도 경영 실적에 책임지는 자리를 맡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경영의 화두와 방향 제시는 총수의 몫이다. 총수가 역할을 못하면 치명적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미래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 중시하는 듯한 태도도 심각하다. 대법원은 뇌물액을 86억원으로 판단하고, 경영권 승계 목적도 인정했다. 상식적으로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 현장방문 등 ‘존재감 과시용’ 행보를 이어가며,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삼성 임원은 “대통령 방문 때 발표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13조원 투자계획도 실패 위험성이 높다”고 털어놨다. 삼성의 ‘이재용 수렁’이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저는 오늘 삼성 회장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면서 이에 따른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4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경영 퇴진 등 쇄신안을 발표했다. 삼성 특검이 4조5천억원대 차명계좌 운용 혐의 등으로 기소한 직후였다. 이 회장은 이어 호소했다. “오늘날 삼성이 있기까지는 국민 여러분과 사회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 더 아끼고 도와주셔서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더 늦기 전에 11년 전 부친의 결단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곽정수 ㅣ 논설위원

jskwa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