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08 04:59
수정 : 2018.02.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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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서 호송차에 오르며 미소짓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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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청와대 보고서 “경영권 승계 가시화, 정부 영향력 가능”
2015년 기업지배구조원 “합병 목적 경영권 승계 차원”
2017년 문형표 재판 “이재용 등 지배권 확립위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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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서 호송차에 오르며 미소짓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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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가 ‘면죄부 판결’의 핵심 근거로 ‘경영권 승계작업이 없었다’는 판단을 내놓은 것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만 승계작업을 몰랐느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 때부터 시작된 승계작업은 정부, 전문가, 다른 재판도 인정하고 있는데 유독 이번 항소심 재판부만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승계작업’을 “피고인 이재용이 최소한의 개인 자금을 사용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정의했다. 이에 맞서 이 부회장 변호인들은 “승계작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증거가 없다”며 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런 재판부의 판단은 삼성 경영권 승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주목한 박근혜 정부 당시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등 정부기관뿐 아니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같은 민간기관 보고서 등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2014년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각각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 부회장의 지배권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내용이 담겨 있다. 같은 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도 ‘이건희 유고의 장기화와 경영권 승계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의 당면과제는 이재용 체제의 안착이고,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1심 재판부는 “금융·감독기관의 전문가들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피고인 이재용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와 관련이 있다고 평가·분석하고 있다”며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했다.
특히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합병이 진행되던 2015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합병 목적이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며 국민연금공단에 불리한 합병비율에 반대를 권고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1·2심 판결문도 일관되게 ‘삼성 경영권 승계’를 인정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제일모직 주식의 합병가액에 대한 삼성물산 주식의 합병가액 비율이 낮게 산정될수록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합병 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0.35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결정됐고, 이 때문에 문 전 장관과 함께 기소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며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문 전 장관의 1심 재판부도 “합병은 2013년 12월 이재용 등 대주주 일가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발행을 통해 대주주가 된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인수, 2014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 에스디아이(SDI) 합병 후 에버랜드의 제일모직으로의 사명 변경, 2014년 12월 제일모직의 상장, 2015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및 삼성물산으로의 사명 변경, 이후 삼성물산의 지주회사화 계획으로 이어지는 이재용 등 대주주 일가의 삼성그룹 지배권 확립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며 그동안 진행된 삼성의 3세 경영권 승계 과정을 자세히 적시했다.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변호사는 “이 부회장 항소심이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논거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단 하나로, 1심 판단을 뒤집은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 부회장이 합병 등을 통해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면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상식적인데, 도대체 항소심 재판부만 삼성 승계작업을 몰랐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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