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디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 남짓 걷는 길엔 산새와 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판교 근처 세종연구소, 국제협력단,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이 자리잡은 곳. 철제문을 통과해 중앙 잔디를 끼고 잣나무 등이 뻗은 숲길을 오르면 나지막한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두환 대통령의 퇴임 대비용이었다는 일해재단, 그 영빈관엔 국제협력단의 지구촌체험관임을 알리는 색색의 간판이 붙어 있다. 연간 4만명이 방문한다. 2011년 말 전시장으로 리모델링되며 호사스런 샹들리에나 가구, 뒤편 파3 골프장은 사라졌지만, 원형대로라는 정원수 등은 80년대 모습을 짐작게 한다. 미르와 케이(K)스포츠가 일해재단의 이름을 다시 소환하고 있지만, 솔직히 처음엔 우스웠다. 미르재단의 공익법인 결산에 기재된 ‘고유목적사업’은 한국 전통문화가치 발굴사업, 한국 전통유산 정착사업 및 전통유산의 글로벌사업, 한국 전통문화 지원 및 교육사업이다. 초등생 작문보다 못한 동어반복은 480억원대 재단의 것이라 믿기 힘들다. 두 재단의 창립총회 회의록은 표기 오류까지 똑같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의 주장처럼, 정말 자신들이 주도한 재단들이라면 전경련의 ‘수준’을 의심할 일이다. 다음엔 무서웠다. 이런 ‘수준 이하’를 재깍 승인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드러난 것만 봐도, 지난해 10월26일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은 ‘굳이’ 서울 출장을 와 전경련으로부터 법인 설립 신청서를 받은 뒤 ‘굳이’ 근무시간 이후 서울출장소에서 결재기안을 했다. 대기라도 한 듯 세종시의 담당 사무관과 과장은 20분 안에, 국장과 실장은 다음날 일찍 결재를 마친다. 담당 국장이 모처의 지시를 받은 뒤 문체부 쪽에서 재단에 연락해 서류를 받았다고 파다했던 말이 풍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법인 설립에 밝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법인 허가 업무는 노무현 정권 때 상당수 지자체에 이양돼 주된 사업이 3개 이상 시도에서 이뤄질 때만 문체부가 허가한다. 법인 쪽도 3곳 이상 활동 증명이 쉽지 않다.” “법인 설립 허가는 상당히 정무적인 작업이다. 서류 너머와 행간을 봐야 하고 이사들 신원조회, 관련 분야 조사는 기본이다. 허가에 평균 20여일은 그래서 나오는 거다.” 심지어 미르 결재 당시엔 필수서류인 총회 회의록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문체부의 ‘직무유기’다. 제대로 된 공무원이라면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일이다. 하긴 정관과 회의록이 가짜로 드러났는데도 “허가를 취소할 근거가 없다”는 장관 앞에서, 어찌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냐마는. 재계 서열에 맞춰 쌍둥이 재단에 800억원대 돈을 나눠 낸 16개 그룹 명단을 보노라면 1985년 부실기업 정리라는 명분 아래 해체됐던 재계 7위 국제그룹까지 떠오른다. 요즘 젊은층엔 ‘연아 운동화’로 유명하지만, 말표나 기차표 아동화를 신던 4050들에게 1981년 이 그룹의 국제상사가 내놓은 ‘프로-스펙스’는 나이키 등 외산 브랜드에 맞선 첫 토종 브랜드였다. 일해재단은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이 정권에 밉보인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아웅산 테러 희생자 유족 장학사업으로 출범했던 재단을 일해안보통일연구소로 확장하겠다며 ‘자발적’ 할당액을 맡기던 자리에서, 양 회장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전경련이 창구 구실을 맡는 요즘은 적어도 그룹 총수들이 면전에서 내몰리는 일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준 이하의 회의록과 정관은 세상이 변했음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 말 중 하나는 맞다. 전두환 정권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지금, 비상시국은 비상시국이다. dora@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프로-스펙스’의 추억 / 김영희 |
사회에디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 남짓 걷는 길엔 산새와 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판교 근처 세종연구소, 국제협력단,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이 자리잡은 곳. 철제문을 통과해 중앙 잔디를 끼고 잣나무 등이 뻗은 숲길을 오르면 나지막한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두환 대통령의 퇴임 대비용이었다는 일해재단, 그 영빈관엔 국제협력단의 지구촌체험관임을 알리는 색색의 간판이 붙어 있다. 연간 4만명이 방문한다. 2011년 말 전시장으로 리모델링되며 호사스런 샹들리에나 가구, 뒤편 파3 골프장은 사라졌지만, 원형대로라는 정원수 등은 80년대 모습을 짐작게 한다. 미르와 케이(K)스포츠가 일해재단의 이름을 다시 소환하고 있지만, 솔직히 처음엔 우스웠다. 미르재단의 공익법인 결산에 기재된 ‘고유목적사업’은 한국 전통문화가치 발굴사업, 한국 전통유산 정착사업 및 전통유산의 글로벌사업, 한국 전통문화 지원 및 교육사업이다. 초등생 작문보다 못한 동어반복은 480억원대 재단의 것이라 믿기 힘들다. 두 재단의 창립총회 회의록은 표기 오류까지 똑같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의 주장처럼, 정말 자신들이 주도한 재단들이라면 전경련의 ‘수준’을 의심할 일이다. 다음엔 무서웠다. 이런 ‘수준 이하’를 재깍 승인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드러난 것만 봐도, 지난해 10월26일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은 ‘굳이’ 서울 출장을 와 전경련으로부터 법인 설립 신청서를 받은 뒤 ‘굳이’ 근무시간 이후 서울출장소에서 결재기안을 했다. 대기라도 한 듯 세종시의 담당 사무관과 과장은 20분 안에, 국장과 실장은 다음날 일찍 결재를 마친다. 담당 국장이 모처의 지시를 받은 뒤 문체부 쪽에서 재단에 연락해 서류를 받았다고 파다했던 말이 풍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법인 설립에 밝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법인 허가 업무는 노무현 정권 때 상당수 지자체에 이양돼 주된 사업이 3개 이상 시도에서 이뤄질 때만 문체부가 허가한다. 법인 쪽도 3곳 이상 활동 증명이 쉽지 않다.” “법인 설립 허가는 상당히 정무적인 작업이다. 서류 너머와 행간을 봐야 하고 이사들 신원조회, 관련 분야 조사는 기본이다. 허가에 평균 20여일은 그래서 나오는 거다.” 심지어 미르 결재 당시엔 필수서류인 총회 회의록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문체부의 ‘직무유기’다. 제대로 된 공무원이라면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일이다. 하긴 정관과 회의록이 가짜로 드러났는데도 “허가를 취소할 근거가 없다”는 장관 앞에서, 어찌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냐마는. 재계 서열에 맞춰 쌍둥이 재단에 800억원대 돈을 나눠 낸 16개 그룹 명단을 보노라면 1985년 부실기업 정리라는 명분 아래 해체됐던 재계 7위 국제그룹까지 떠오른다. 요즘 젊은층엔 ‘연아 운동화’로 유명하지만, 말표나 기차표 아동화를 신던 4050들에게 1981년 이 그룹의 국제상사가 내놓은 ‘프로-스펙스’는 나이키 등 외산 브랜드에 맞선 첫 토종 브랜드였다. 일해재단은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이 정권에 밉보인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아웅산 테러 희생자 유족 장학사업으로 출범했던 재단을 일해안보통일연구소로 확장하겠다며 ‘자발적’ 할당액을 맡기던 자리에서, 양 회장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전경련이 창구 구실을 맡는 요즘은 적어도 그룹 총수들이 면전에서 내몰리는 일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준 이하의 회의록과 정관은 세상이 변했음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 말 중 하나는 맞다. 전두환 정권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지금, 비상시국은 비상시국이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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