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22 08:21
수정 : 2016.09.22 08:25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케이(K)스포츠’는 누가 봐도 5공의 일해재단을 연상시킨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정부의 설립 허가 과정이나 각 기업이 울며 겨자 먹기로 거액을 출연한 정황 등이 판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정상’으로 점철된 재단 설립은 ‘청와대’라는 거대한 권력을 빼놓고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권력의 비선 실세로 소문난 최순실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설립 당시 경제수석) 등 박근혜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이름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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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네거리의 빨간 신호등 너머로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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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재단과 청와대의 연관 관계를 설명해줄 중요한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기금 마련 과정의 비위 문제로 지난 7월 안종범 수석을 내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안 수석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기업체들에 출연 압력을 넣었다는 첩보가 입수돼 관련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금 출연 이유와 과정 등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조사 내용은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이유를 묻는 말에 기업 관계자들이 대답을 못 하고 먼 산만 바라봤다고 한다. 겉으로는 자발적 출연이지만 실제 내용은 ‘강제모금’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사실은 청와대가 왜 그토록 이 특별감찰관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고 있는지도 잘 설명해준다. 청와대는 이 감찰관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 과정에서 언론사 기자와 통화한 것을 두고 “국기 문란”이라며 노발대발했다. 사안에 비해 너무나 과도한 감정 표출이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이 특별감찰관이 두 재단의 설립 과정을 내사한 것은 말 그대로 박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행위였던 셈이다. 이 특별감찰관이 수사기밀 의혹에 휘말려 사표를 내는 바람에 내사가 중단되지만 않았다면 청와대의 개입 의혹이 소상히 밝혀질 수도 있었다.
최순실씨를 둘러싼 의혹도 더욱 증폭되고 있다. 최씨가 단골로 다니던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이 케이스포츠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이어, 최씨의 의뢰로 박 대통령의 취임식 한복을 만든 디자이너가 미르 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사실도 밝혀졌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재단이 지난 5월과 6월 박 대통령의 국외순방 때 동행해 현지 행사까지 연 것도 청와대의 각별한 배려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언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을 계속할 것인가. 청와대는 이 사태에 침묵하고 외면할 권한이 없다. 안 수석을 비롯해 청와대 관계자들이 재단 설립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전두환 정권이 일해재단 설립 과정에 대해 그토록 거짓말을 했으나 결국 들통이 나고 만 사실을 청와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청와대가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문제를 어물쩍 숨기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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