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20 17:16
수정 : 2016.09.20 19:43
2011년 아프간, 파키스탄 탈레반 근거지 여행
미국 온 뒤 수염기르고 무슬림 전통 의상 입어
경찰, CCTV·지문 등으로 신원 확인 뒤 공개 수배 4시간도 안돼 체포
현재로선 단독 범행 가능성에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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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체포된 아흐마드 칸 라하미(28)가 들것에 실려 이송되고 있다. 린든/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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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 첼시 지역에서 발생한 압력솥 테러 사건 및 다른 2건의 폭발물 설치 용의자로 19일 체포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아흐마드 칸 라하미(28)는 그동안 미국 수사당국의 테러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미 언론들은 19일 라하미가 테러분자나 출국금지자 명단에 올라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시엔엔>(CNN)은 이날 수사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라하미는 아프가니스탄을 수차례 여행했다. 미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심문을 받았지만 통상적인 절차였다”고 전했다.
아프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와 미국 시민권자인 라하미는 미들섹스 카운티 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했으며, 뉴저지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가까운 엘리자베스시 엘모라 거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퍼스트 아메리칸 프라이드치킨’이라는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해왔다. 1층은 가게이고 윗층은 라하미 가족들이 함께 거주하는 살림집이었다. 계산대를 맡았던 라하미는 단골손님이 돈이 없으면 닭고기 요리를 공짜로 주기도 하는 등 친절한 청년이었다고 동네사람들은 기억했다.
라하미의 범행 동기는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들의 말을 인용해 “라하미가 4년 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뒤로 수염을 길렀고, 무슬림 전통 의상을 입었으며, 가게 뒤에서 기도를 했다”며 아프간에 다녀온 뒤로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왜 첼시 지역 등을 목표물로 삼았는지 등에 대해선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시엔엔>은 라하미가 2011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파키스탄의 퀘타에서 몇주를 보냈다고 밝혔다. 퀘타는 탈레반의 근거지로 알려져 있는데, 라하미는 여기서 파키스탄 여성과 만나 결혼했다. 그는 2013년에도 파키스탄을 방문했으며 거의 1년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다만, 그가 뉴욕·뉴저지 일원에서 활동하는 테러조직원일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미 연방수사국(FBI) 뉴욕지소의 윌리엄 스위니 부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테러)분자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할만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수사당국은 이날 오전 뉴저지주 북동부에 있는 린든에서 라하미를 총격 끝에 체포한 뒤 경찰관 살인 미수와 2급 무기 불법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체포 과정은 극적이었다. 수사 당국은 첼시 폭발 직전 폭발지역과 미폭발 압력솥이 발견된 구역 인근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에서 캠핑가방을 들고 움직이는 라하미의 모습을 찾았으며, 폭발물로 사용된 압력솥에서도 라하미의 지문이 발견되자 확신을 갖고 19일 아침 7시39분께 트위터를 통해 라하미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어 15분 뒤에는 뉴욕 시민들에게 휴대폰을 통해 라하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신고해달라는 긴급 문자 경보를 보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자세한 신원과 이름, 차량 번호를 공개했다.
오전 10시30분쯤 경찰은 한 남성이 작은 술집 앞에서 잠들어 있다는 가게 주인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이 라하미를 깨우고 손을 들라고 하자 라하미는 바로 권총을 꺼내 경찰을 향해 쐈다. 방탄복을 입고 있었던 이 경찰은 대응 사격에 나섰고, 경찰들과의 총격전 끝에 라하미는 어깨에 총을 맞으면서 체포됐다.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점으로, 공개수배령을 내린 지 4시간도 채 지니지 않은 상황이었다.
라하미는 체포된 뒤 뉴어크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두 명도 총상을 입었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니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맨해튼 첼시 지역 도로변에서 강력한 폭발이 발생해 29명이 다쳤으며, 같은 날 오전 뉴저지주 시사이드 파크 마라톤 행사장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새로 폭발물이 발견된 엘리자베스 기차역은 맨해튼 첼시로부터 약 20㎞, 시사이드 파크로부터 83㎞ 거리에 있다. 경찰은 아직 세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모두 라하미의 행위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황금비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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