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13 22:28
수정 : 2016.09.13 22:56
경주 주민들의 악몽
진원지서 27km 경주 양남면 황씨
두번째 지진 뒤 손주들과 함께 짐싸
“보통 건물 없는 곳으로 대피하는데
원전이 있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첨성대 2cm 기울고 다보탑 난간석 파손
경주 일대 문화유산 상당수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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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4시 경북 경주 양남면 나아리 나아해변에 자리잡은 월성원전 1~4호기가 정비를 하려고 가동을 멈췄다. 월성원전 1~4호기 뒤쪽에 신월성 1~2호기와 방폐장이있다. 경주/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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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 살수록 불안하죠. 지진 강도가 점점 더 세지니까요.”
13일 오후 3시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 홍보관 앞에서 만난 주민 황분희(68)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12일 저녁 7시44분(규모 5.1)과 8시32분(규모 5.8) 경주 내남면에서 일어난 지진은 바로 옆에 있는 양남면도 뒤흔들었다. 양남면에는 월성원전 1~4호기, 신월성원전 1~2호기,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이 몰려 있다. 나아리는 양남면에서도 원전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나아리는 주민 830명 정도가 사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지진 진원지에서 이곳 나아리까지는 직선거리로 27㎞다.
“첫번째 지진이 났을 때는 몸이 흔들리는 정도였는데, 두번째 지진이 나니까 선반 위에 있던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더라고요.” 황씨는 어제 두차례 지진이 일어났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황씨는 두번째 지진이 일어나자 도저히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 손녀, 손자와 함께 짐을 싸서 마당에 있는 승용차에 옮겨 실었다고 한다. 황씨는 딸과 사위에게 손녀, 손자들을 데리고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6살 난 손자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두고는 갈 수 없다”고 해서 밖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황씨는 “지진이 나면 보통 집을 나가서 건물 없는 곳으로 대피하면 되는데 여기는 원전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괜히 밖으로 나갔다가 원전에서 누출 사고라도 일어나면 집에 문 닫고 있는 것만 못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날 마을 길에서 만난 나아리 주민들은 걱정스런 얼굴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주민들은 지진이 일어나자 양남면 읍천리 나산초등학교 운동장과 근처 공원에 모여 자정까지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몇몇 주민은 짐을 싸서 경북 영천 등으로 나갔다가 아침에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원전이 보이는 나아해변에 가서 원전에 이상이 없는지를 보기도 했다. 주민 김정섭(69)씨는 “지진이 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원전이 바로 위에 있다 보니 혹시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불안했다”고 말했다.
월성원자력 홍보관 앞에는 천막 농성장이 쳐져 있었다. 나아리의 일부 주민들은 2년 전 이곳에 천막을 쳐놓고 원전 반대 농성을 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노후 원전인 월성원전 1호기 재가동 문제가 불거진 것을 계기로 주민들이 농성을 시작했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해 설계수명(30년)이 다한 월성원전 1호기 폐쇄를 기대했다. 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해 2월27일 월성원전 1호기의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천막 농성장 근처에는 ‘2·27 날치기 규탄 경주 월성1호기 재가동 중단하라’, ‘제발 이주시켜주세요’라고 적힌 빛바랜 펼침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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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경주 첨성대에서 지진 피해 점검을 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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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일대 문화유산들도 불국사 다보탑 난간석이 내려앉는 등 상당수가 훼손 피해를 당했다. 문화재청은 13일 경주 일대의 문화유산들을 긴급점검한 결과 불국사 다보탑(국보 20호)과 청도 운문사 서삼층석탑(보물 678호) 등 모두 23곳의 국가·시도지정문화재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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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청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불국사에서 전날 지진 여파로 떨어진 다보탑의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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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의 계측 자료를 보면, 불국사 다보탑의 경우 상륜부 난간석 일부가 탑 몸체를 벗어나 내려앉았고, 운문사 삼층쌍탑은 동탑 꼭대기 옥륜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첨성대는 기존 상태보다 북쪽으로 약 2㎝ 기울어졌고, 상부 정자석 남동쪽 모서리도 약 5㎝ 틈이 더 벌어졌다.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과 기림사 대적광전(보물 833호)의 벽체도 일부 균열이 생겼고, 경주향교는 명륜당 벽체가 일부 흘러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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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청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불국사에서 전날 지진 여파로 떨어진 대웅전 구조물을 살펴보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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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2일 밤 문화재청은 불국사 대웅전 지붕과 오릉 담장의 기와 일부가 떨어졌으며, 석굴암 진입로에 낙석이 흩어진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재청은 긴급 보수비 23억원을 책정해 복구에 나서는 한편, 분야별 전문가들로 특별안전점검반을 꾸려 현지 문화유산들에 대한 정밀조사를 지속하기로 했다.
경주/김일우 기자, 노형석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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