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늑장에 지휘부 실종, 구멍 뚫린 재난 대처 |
12일 저녁 경주 일원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으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재난대응체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자칫 큰 재앙으로 이어질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 안전이 아무 대책 없이 내팽개쳐진 꼴이다.
정부의 늑장 대응을 보면 과연 정부 기능이 유지되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국민안전처가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것은 규모 5.1인 첫 지진 뒤 8분여 만인 7시53분이었다. 기상청은 발생 20초 만에 경보를 냈지만 안전처 내부의 복잡한 절차 탓에 늦어졌다는 것이다. 8시32분 규모 5.8의 본진이 발생했을 때도 9분 지나서야 문자가 발송됐다. 그나마 주변 지역에만 전파돼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는 아예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되지도 않았다. 폭염 때는 그렇게 자주 문자를 보내던 안전처는 몇 시간 넘게 ‘먹통’이었다. 이러고도 무슨 ‘긴급’이며, 이러고도 어떻게 국민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재난 대응의 컨트롤타워도 실종됐다. 국민안전처가 국무총리에게 상황을 보고한 것은 첫 지진에서 36분여가 지난 8시21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밤 9시30분에야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첫 공식 입장과 지시는 밤 10시31분에야 나왔다. 첫 지진 뒤 2시간47분 만이다. 그때까지 대통령도 총리도 국민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4월 구마모토 지진 발생 26분 만에 국민 앞에 나와 상황 지휘에 나섰던 아베 일본 총리와는 비교하기도 부끄럽다. 대체 이런 국민 안전 불감증과 무능은 언제까지 반복될 것인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재난방송도 재난 대처엔 한참 모자랐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라는 <한국방송>(KBS)은 첫 지진 뒤 3분이 지나서야 자막으로 지진 소식을 알렸다. 방송 중이던 프로그램을 끝까지 방영하면서 중간중간 자막을 내보내고 4분 정도의 뉴스특보도 두 차례 냈지만, 이미 진동이 휩쓸고 간 한참 뒤인데다 정보나 영상도 부족했다. 지진 발생 몇 초 만에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비상방송으로 전환하는 일본 <엔에이치케이>와는 다르다.
재앙은 언제든 느닷없이 닥칠 수 있다. 이번 지진은 그 예고일 수 있다. 우리의 재난대응체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게 확인된 만큼 서둘러 전면적인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정부의 각성도 당연하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