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국제정치의 현실 차원에서 보면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곡조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전략 차원에서 보면, 선거판에서 여론을 애국과 종북으로 편가르기 하면서 야권을 ‘종북 프레임’에 가둬버릴 수 있는 이슈가 바로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이다. 금년 들어 여권 내에서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움직임이 있을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독자적 핵무장은 한국 정치지도자의 결단이나 여론 지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선 기술적 장벽을 넘을 수 없다. 핵무장을 하려면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미 원자력협정 때문에 한국은 그 많은 원자로에서 쓰고 난 연료봉을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가 없다. 우라늄은 저농축이건 고농축이건 못하게 돼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내에 플루토늄 재처리 허락을 받아내겠다고 기염을 토했지만 안 됐다. 박근혜 정부도 3년을 씨름했지만 ‘재처리 불허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미국의 입장이 워낙 확고하기 때문이다. 2004년 8월, 우리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 수준의 플루토늄을 추출(1982년)했고 0.2g의 우라늄 저농축 실험(2000년)을 했던 일이 뒤늦게 불거졌다. 핵폭탄 하나 만드는 데 플루토늄은 6~8㎏, 우라늄 폭탄은 93~95% 정도 고농축된 우라늄이 필요하다. 그런데 ㎎ 수준의 플루토늄 추출, 10% 정도의 저농축 우라늄 제조 실험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 우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로 끌고 가려 했다. 당시 정부는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에 과학자들이 호기심으로 실험을 좀 해봤을 뿐임을 극구 해명했다. 다행히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물질의 양 자체가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안보리 제재를 간신히 모면했던 적이 있다. 핵무장에 필요한 핵물질 관리가 이렇게 철저하고 엄격하다. 설사 우리가 북한처럼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독자적으로 핵기술을 확보해서 몰래 핵무장을 했다 치자. 그날로 핵우산을 제공하는 한-미 동맹은 깨지게 된다. 그리고 북한에 가해지는 것과 같은 유엔 제재가 들어올 것이다. 한-미 동맹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독자 핵무장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냉혹한 현실을 알고 나면 국민들도 더 이상 독자 핵무장 주장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마찬가지다. 1991년 12월,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돼 있던 전술핵을 완전 철수시키면서 북한의 핵활동을 막기 위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1991년 말 체결됐다. 그러나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함으로써 ‘공동선언’을 깼다. 그리고 지난 9월 5차 핵실험까지 해버렸다. 북한이 ‘공동선언’을 깼으니까 우리도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 전술핵은 명백히 공격용인데, 재배치 시 북·중·러가 가만히 있겠는가? 정부가 “사드는 방어용 무기”라고 누차 역설해도 저렇게 반발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기지에 전술핵을 재배치할 필요도 없다. 항공모함에 싣고 다니는 핵무기로 대북 차원에서 ‘확장된 억지’력을 과시하며 한-미 동맹을 관리하고 있다. 핵무기를 실은 전폭기가 괌 미군기지에서 평양 상공까지 비행하는 데 2시간밖에 안 걸린다. 미국으로서는 새삼 물의만 일으킬 뿐 실익도 없는 전술핵 재배치를 할 이유가 없다. 핵 관련 한-미 관계의 불편한 진실, 국제 정치의 현실 차원에서 보면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곡조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정치 차원에서도 그럴까?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계산은 다를 수 있다. 국내 정치, 특히 내년 대선전략 차원에서 보면,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이론적으로 말이 되든 안 되든, 의외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선거판에서 여론을 애국과 종북으로 편가르기 하면서 야권을 ‘종북 프레임’에 가둬버릴 수 있는 좋은 이슈가 바로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이다. 북한이 때맞춰 핵·미사일 활동이라도 해버리면 안보포퓰리즘의 파괴력은 그만큼 더 커질 것이고. 지난 7월8일 정부가 사드 배치 방침을 발표하면서, 배치 완료 시점을 대선 시점인 내년 말로 제시했다. 내년 중반부터 여권은 사드, 핵무장, 전술핵 찬반 논쟁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있다. 2012년 대선 때 남북협상 현장의 기본도 모르는 모략에 불과한 ‘엔엘엘(NLL) 포기설’이 상당수 국민들에게 먹혀들면서 표심을 흔들었던 적이 있다. 야권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미리 세워 놓아야 할 것이다. 실수를 두 번씩이나 해서야 되겠는가?
칼럼 |
[정세현 칼럼]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 그 허와 실 |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국제정치의 현실 차원에서 보면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곡조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전략 차원에서 보면, 선거판에서 여론을 애국과 종북으로 편가르기 하면서 야권을 ‘종북 프레임’에 가둬버릴 수 있는 이슈가 바로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이다. 금년 들어 여권 내에서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움직임이 있을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독자적 핵무장은 한국 정치지도자의 결단이나 여론 지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선 기술적 장벽을 넘을 수 없다. 핵무장을 하려면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미 원자력협정 때문에 한국은 그 많은 원자로에서 쓰고 난 연료봉을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가 없다. 우라늄은 저농축이건 고농축이건 못하게 돼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내에 플루토늄 재처리 허락을 받아내겠다고 기염을 토했지만 안 됐다. 박근혜 정부도 3년을 씨름했지만 ‘재처리 불허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미국의 입장이 워낙 확고하기 때문이다. 2004년 8월, 우리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 수준의 플루토늄을 추출(1982년)했고 0.2g의 우라늄 저농축 실험(2000년)을 했던 일이 뒤늦게 불거졌다. 핵폭탄 하나 만드는 데 플루토늄은 6~8㎏, 우라늄 폭탄은 93~95% 정도 고농축된 우라늄이 필요하다. 그런데 ㎎ 수준의 플루토늄 추출, 10% 정도의 저농축 우라늄 제조 실험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 우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로 끌고 가려 했다. 당시 정부는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에 과학자들이 호기심으로 실험을 좀 해봤을 뿐임을 극구 해명했다. 다행히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물질의 양 자체가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안보리 제재를 간신히 모면했던 적이 있다. 핵무장에 필요한 핵물질 관리가 이렇게 철저하고 엄격하다. 설사 우리가 북한처럼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독자적으로 핵기술을 확보해서 몰래 핵무장을 했다 치자. 그날로 핵우산을 제공하는 한-미 동맹은 깨지게 된다. 그리고 북한에 가해지는 것과 같은 유엔 제재가 들어올 것이다. 한-미 동맹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독자 핵무장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냉혹한 현실을 알고 나면 국민들도 더 이상 독자 핵무장 주장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마찬가지다. 1991년 12월,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돼 있던 전술핵을 완전 철수시키면서 북한의 핵활동을 막기 위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1991년 말 체결됐다. 그러나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함으로써 ‘공동선언’을 깼다. 그리고 지난 9월 5차 핵실험까지 해버렸다. 북한이 ‘공동선언’을 깼으니까 우리도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 전술핵은 명백히 공격용인데, 재배치 시 북·중·러가 가만히 있겠는가? 정부가 “사드는 방어용 무기”라고 누차 역설해도 저렇게 반발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기지에 전술핵을 재배치할 필요도 없다. 항공모함에 싣고 다니는 핵무기로 대북 차원에서 ‘확장된 억지’력을 과시하며 한-미 동맹을 관리하고 있다. 핵무기를 실은 전폭기가 괌 미군기지에서 평양 상공까지 비행하는 데 2시간밖에 안 걸린다. 미국으로서는 새삼 물의만 일으킬 뿐 실익도 없는 전술핵 재배치를 할 이유가 없다. 핵 관련 한-미 관계의 불편한 진실, 국제 정치의 현실 차원에서 보면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곡조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정치 차원에서도 그럴까?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계산은 다를 수 있다. 국내 정치, 특히 내년 대선전략 차원에서 보면,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이론적으로 말이 되든 안 되든, 의외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선거판에서 여론을 애국과 종북으로 편가르기 하면서 야권을 ‘종북 프레임’에 가둬버릴 수 있는 좋은 이슈가 바로 독자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이다. 북한이 때맞춰 핵·미사일 활동이라도 해버리면 안보포퓰리즘의 파괴력은 그만큼 더 커질 것이고. 지난 7월8일 정부가 사드 배치 방침을 발표하면서, 배치 완료 시점을 대선 시점인 내년 말로 제시했다. 내년 중반부터 여권은 사드, 핵무장, 전술핵 찬반 논쟁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있다. 2012년 대선 때 남북협상 현장의 기본도 모르는 모략에 불과한 ‘엔엘엘(NLL) 포기설’이 상당수 국민들에게 먹혀들면서 표심을 흔들었던 적이 있다. 야권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미리 세워 놓아야 할 것이다. 실수를 두 번씩이나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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