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11 23:12
수정 : 2016.09.12 10:13
-북 5차 핵실험 후폭풍-
올초 4차때 이미 ‘가장 강한 제재’…추가 수단 마땅치 않아
박 대통령은 김정은 향해 “정신상태 통제 불능” 거친 표현
중국이 문제 풀 열쇠 쥐고 있지만 “시진핑과 통화계획 없다”
“우리와 국제사회의 대응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라오스에서 급히 돌아와 9일 밤 소집한 ‘안보상황 점검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책의 발본적 재검토 등 ‘이전과 다른 대응’을 지시하지 않았다. 정부의 대응도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다. 대북 제재와 군사 대응 준비 태세 강화가 ‘5차 핵실험 대응’의 전부다. 6자회담 재개 등 대화·협상 모색은 박 대통령을 비롯해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더 강력한 대북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가려고 외교적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울림이 없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유엔 70년 역사상 비군사적 조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3월3일 외교부 보도자료)인 ‘결의 2270호’를 채택(3월2일)·이행해온 터다. 하지만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는 북-중 무역의 상반기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늘었다. 제재로 “북한 정권에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줘 전략적 셈법을 바꾼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안보리의 추가 결의와 관련해 “2270호에 담지 못한 내용, 이행 과정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것, 새로운 (제재) 요소를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의 2270호가 예외로 둔 일부 민생 분야를 제재 대상에 새로 넣지 않는 한 추가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결의 2270호는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과 국제기구·비정부기구의 인도적 활동에 악영향을 끼칠 제재는 원천적으로 배제(전문·48항)하고 있다. 이는 새 결의에서도 달라질 수 없는 유엔의 원칙이다.
남북관계 차원에서 정부가 취할 추가 제재도 마땅한 게 없다. 4차 핵실험 뒤 ‘남북관계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불리던 개성공단 사업마저 전면 중단한 터다. 박 대통령이 9일 회의에서 외교·국방부 장관한테는 구체적 지시를 하면서도 통일부 장관한테는 아무런 별도 지시를 하지 않은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통일부가 “신규 대북 압박 조처 발굴·추진”(9일 국회 보고자료)이라는 옹색한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대책 없는 대책’, 사실상 무대책 상황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정책 실패에 대한 성찰도 없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엔 당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핵실험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2~5차 핵실험이 이뤄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아무도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9일 회의에서 외부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한테는 “정신상태가 통제불능”이라고 짜증을 내고, 야당한테는 “끊임없는 사드 반대와 같이 대안 없는 정치공세”를 펴는 집단이라는 비난을,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는 “불순세력” “사회불안 조성자”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날렸다. 그 밑바탕엔, 대화와 협상을 원천 배제한 탓에 정책 수단이 사실상 고갈된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북핵 문제를 다룬 경험이 풍부한 전직 고위 인사는 “결국 문제를 풀려면 중국이 제재와 함께 협상의 판을 벌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며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박 대통령의) 통화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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