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북한 |
북한 핵실험의 역사…‘3년 주기’ 깨지고, 핵능력은 고도화 |
이른바 ‘북핵 위기’가 시작된 것은 1993년 초다. 북한의 핵 무기 개발 의혹을 이유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그해 3월12일 북한은 ‘정부성명’을 통해 전격적으로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불안감이 커지자, 북-미는 서둘러 협상에 나섰다. 결국 넉달여의 협상 끝에 1994년 10월 북-미는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후 북-미 양쪽이 합의 사항 이행을 서로 문제 삼아, 위기는 끝날 줄 몰랐다.
북핵 위기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은 2006년의 일이다. 그해 10월9일 오전 10시36분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진도 3.9의 지진파가 감지됐다. 같은 달 3일 예고한대로 북한이 결국 핵 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핵 실험의 위력은 1kt 남짓에 그쳤다. 실험 직후 북은 ‘핵 보유국’이라고 선언했다. 국제 사회는 제재로 맞섰다.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사이클이다.
지난 10년여 북한의 핵 실험 역사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첫째, 핵 실험을 전후로 핵탄두를 탑재할 ‘운반수단’인 미사일 발사 실험이 이어졌다. 2006년 10월 1차 핵 실험을 석달여 앞두고도 북은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둘째, 한번 핵 실험을 실시하고 나면 3년 남짓 뒤에야 다음번 실험을 실시했다. 핵실험 능력 개선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앞선 실험으로 파괴된 실험장 시설 복구·재건설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셋째, 핵 실험 계획을 사전에 발표했다. 이 패턴은 4차 핵 실험으로 깨졌다.
북의 2차 핵 실험은 2009년 5월25일 오전 9시50분께 역시 풍계리 실험장에서 실시됐다. 지진파의 진도는 4.5였고, 폭발력은 2.35kt으로 추정됐다. 앞서 같은 해 4월29일 북은 핵 실험을 예고한 터였다. 3차 핵 실험은 2013년 2월12일 오전 11시57분께 실시됐다. 진도는 4.9로 기록됐다. 우리 정부는 폭발의 위력을 6~9kt으로, 중국은 8.4kt~16kt으로 평가했다. 이때도 역시 북은 같은 해 1월24일 핵 실험을 예고했다. 그해 4월 북은 여러차례에 걸쳐 미사일 발사실험을 단행했다.
북이 사전 예고없이 핵 실험을 실시한 것은 4차 때부터다. 북은 1월6일 오전 10시30분께 풍계리에서 4차 핵 실험을 실시하고,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폭발력은 7kt 정도로 추정됐다. 한달여 뒤인 2월7일엔 광명성 4호를 발사했다.
이번 5차 핵 실험을 앞두고도 북은 올봄부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무수단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를 해왔다. 하지만 4차 때에 이어 이번에도 핵 실험 계획을 사전에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 패턴이 더 깨졌다. ‘3년 주기’로 실시하던 핵 실험을 이번엔 8개월여 만에 재개했기 때문이다. 북이 핵 물질과 핵 무기 기술은 물론 이를 개발·유지하는 데 필요한 실험 기술까지 고도화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럴 경우, 북은 언제든 핵 실험을 되풀이 할 수 있다. 정인환 기자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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