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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18 17:59 수정 : 2016.09.18 19:19

박현
경제에디터

문: “우리나라 재정은 주요 국가 가운데서 상당히 건전한 편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리나라에 재정을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하는데 우리 정부는 왜 소극적인가?”(기자)

답: “우리는 재정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이걸 한번 풀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수밖에 없다. 유럽 쪽은 지금 복지 시스템이 거의 완비된 상태에 있고, 우리는 이제 고령화가 막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제도를 그대로 가져가기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만큼은 그냥 올라가게 돼 있다.”(기획재정부 고위 관료)

문: “오이시디 평균으로 언제 간다는 건가?”

답: “이대로 가더라도 2040년쯤이면 오이시디 평균 가까이로 간다.”

최근 재정당국이 내년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기자와 나눈 문답이다. 이 당국자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도 자연스럽게 ‘고복지’로 간다는 이른바 ‘복지 자연증가론’을 강변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오이시디의 공공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1.6%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10.4%에 불과하다. 그러나 2040년에는 우리나라도 21%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의 답변을 들으면서 이 정부의 ‘복지 철학’이 여전히 부재한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정부 설명처럼 복지지출이 늘어난다 해도 그 증가액의 상당 부분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연금과 의료비가 차지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저출산 해소와 소득 불평등 완화다. 이 두 가지 핵심 과제에 대한 해결 방안과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내년 예산안을 뜯어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내년 보건복지부 소관 사업의 지출 규모는 올해 예산보다 3.3% 늘어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연금 등을 위한 기금지출이 6.4% 늘어나는 데 비해, 예산은 1.2% 증가에 그친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보육·가족 및 여성’ 관련 예산도 올해보다 1.2%만 증가한다. 구체적인 정책에서도 눈에 확 띄는 출산장려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렵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기초생활보장과 취약계층지원 증가율도 각각 3.6%, 1.6%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재정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내년부터 줄어든다. 우리 정부의 최대 실패작인 인구문제를 되돌리기 위해선 아기를 낳으면 국가가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획기적인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과거 저출산 대표국이었던 프랑스가 아동수당 등 각종 출산장려 정책으로 합계출산율을 2명 이상으로 끌어올린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우리는 소득 불평등 정도도 선진국 중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2012년 44.9%로, 주요국 가운데 미국(47.8%) 다음으로 높다. 불평등이 심하면 경제성장도 해친다. 복지가 ‘재원 낭비’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시각은 이미 경제학계에서도 주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복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또 내수와 중소기업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함으로써 절대다수에게 안정적 소득 창출 기반을 마련해야 탄탄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정부는 수출과 대기업에만 목을 매고 있다. 이는 나라경제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국회 예산안 심의가 곧 다가온다.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완전히 다시 짠다는 각오로 나서주길 바란다. 이 정부에만 맡겨놔서는 우리나라가 2040년께 계속 ‘번성하는’ 나라가 아니라, 고령층이 다수가 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퇴화하는’ 나라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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