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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2 18:29 수정 : 2016.08.02 20:16

안재승
논설위원

요즘 대기업 홍보·대관업무 담당자들 사이에서 “9·28 전에 마지막으로!”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금지되는 일들을 미리 하자는 것이다. 골프 비수기인 한여름인데도 평일 부킹이 이어지고, 송년회를 서너 달 앞당겨 여는 웃지 못할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다.

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참여정부 시절 ‘접대비 실명제’처럼 ‘영수증 쪼개기’ ‘페이백’ ‘명함 끼우기’ 같은 편법들이 다시 동원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카드 몇 개로 나눠 결제하거나 일부는 당일, 나머지는 하루 전날이나 다음날 결제하는 게 영수증 쪼개기, 일단 각자 계산을 한 뒤 돈을 돌려주는 게 페이백, 참석자 수를 부풀려 1인당 평균 금액을 낮추는 게 명함 끼우기다. 접대비 실명제는 50만원 이상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 상대방과 목적을 밝히도록 한 제도이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2004년 도입됐다가 2008년 폐지됐다. 편법이 기승을 부려 효과가 반감된데다, 재계가 기업활동 위축과 소비 침체를 이유로 줄기차게 폐지를 건의했고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관세청 직원이 지난달 26일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 제작한 스티커를 선보이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엊그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원칙적으론 헌재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기업도 힘들 겁니다. (돈을) 쓰다가 안 쓰려니 견디기 힘들지요. 시행착오가 많이 생기고 편법도 늘어날 겁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일단 받아들여야지요. 참고 기다리면서, 바꿀 건 바꾸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허 회장의 말처럼 참거나 피해가려면 분명히 힘들 것이고, 김영란법 도입 취지도 접대비 실명제처럼 실종될 수 있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김영란법에 능동적으로 대응했으면 한다.

국세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기업들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가 10조원에 이른다. 특히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에서 지출된 금액이 1조원을 넘는다. 비공식 접대비까지 더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렇게 접대비를 지나치게 많이 쓰지 말고 그 돈으로 직원 임금이나 협력업체 납품단가를 올려주자. 시설투자와 기술개발에 돌려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접대비 지출보다 소비 증대 효과가 크고 지속적일 수 있다.

김영란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홍보·대관업무 담당자들에게 저녁 시간과 주말을 돌려줄 수 있다. 이들은 평일에는 저녁 술자리, 주말에는 골프 접대로 1년 내내 일정이 빽빽하다. 김영란법을 지키려면 골프 접대는 불가능해진다. 술자리도 1차로 끝내야 한다. 저녁 시간과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각자 내기’(더치페이) 문화를 확산시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식사 3만원 이하’ 규정은 ‘금품수수 금지’의 예외 조항이다. 3만원 이하의 식사 접대를 권장하는 게 아니라 원활한 직무 수행이 목적이라면 예외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다. 적정선이 3만원이냐 5만원이냐를 놓고 따지는 것 자체가 구차한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가급적 더치페이를 하자는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으나 자주 하다 보면 서로 부담감이 줄어 되레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이미 젊은층에서는 더치페이가 많이 퍼져 있고 이를 간편하게 처리해주는 스마트폰 앱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으로 한우농가와 과수농가, 어민들의 피해가 걱정된다면 이번 추석에 정치인이나 공무원, 언론인 말고 직원과 그 가족들을 위해 선물을 해보자. 사실 월급쟁이치고 자기 돈으로 한우 먹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어민 걱정도 덜어주고 직원들 사기도 올려주고 일석이조 아닌가.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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