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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31 15:55 수정 : 2016.07.31 22:03

‘오너 리스크’ 큰 기업일수록 난감한 표정
“삽겹살 2인분에 소주 2병만 해도 3만원 넘어”
“기자간담회 식사와 해외 출장은 어쩌나”
“시범 케이스는 피하자 일단은 완벽 준수”
“투명성 높이고 저녁·주말 있는 삶 계기”지적도

‘부정정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받아 원안 그대로 9월28일부터 시행되는 것으로 확정되자, 기업들이 혼란에 빠졌다. “법이 시행되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업무를 안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홍보나 대관업무 부서 임직원들은 예산과 인력 감소까지 우려하며 고민에 빠지는 모습이다. 당장 9월 중순에 돌아오는 추석 선물을 보낼지 말지를 놓고도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우선 “법을 지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4대 그룹의 한 홍보담당 임원은 “계열사 모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위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의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그룹의 홍보임원은 “내부 지침에 따라 이미 9월부터는 골프와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며 “다른 그룹 쪽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시범 케이스로 걸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고민은 “그렇다고 홍보·대관 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고, 김영란법이 면피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런 고민은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큰 기업일수록 크다. 오너가 치는 ‘사고’로 언론을 자주 찾는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는 “언론사 출입기자나 데스크들과 스킨십을 하는 이유가 뭐겠냐. 회장님과 관련해 부정적인 기사가 났을 때, 기사를 줄여달라거나 회장님 이름을 빼달라거나 우리 쪽 해명을 더 담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아니냐. 그런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술 한잔 마음놓고 못하게 생겼으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은 “김영란법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쏟아낸다. 4대 그룹의 한 홍보임원은 “보통 사람들은 식사비 상한 3만원, 선물값 상한 5만원, 경조사비 상한 10만원도 많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3만원으로는 한정식집·일식집·소고기집은 꿈도 못꾸고, 삼겹살집에 가도 2인분에 소주나 맥주 2~3병 곁들이면 초과한다. 출입기자나 데스크들의 승진 인사 때 축하 뜻으로 보내던 난도 못보낸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웃지못할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올해 송년회를 사실상 9월로 당기는 촌극이 대표적이다. 한 대기업 홍보실장은 “출입기자 대상 송년회를 9월 중순쯤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통신업체 홍보담당자는 “말복 행사를 열어 올해 출입기자들과 함께 하는 송년회를 대신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4대 그룹 계열사 홍보임원은 “일단 김영란법 시행 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9월 중순까지 매주 토·일요일마다 골프 약속이 차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외국에서 신제품 발표 행사를 할 때 출입기자들을 초청하는 것 등을 놓고도 고민에 빠졌다.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전자업체 홍보담당자는 “김영란법 시행 전에 열리는 유럽가전전시회(iFA) 때 언론을 초청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지막 초청 출장이 될 것이라며 가겠다는 곳이 많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홍보·대외협력 경험을 가진 임직원들의 몸값이 올라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홍보와 대관 쪽은 인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킨십이 어렵게 된 만큼 새로 인맥을 쌓는 것은 어렵다는 점에서 각 분야별 마당발들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통신업체 홍보실 관계자는 “내부에서 홍보 임원이 왜 필요하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외국기업들처럼 홍보실을 축소하고 홍보대행사를 쓰려고 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피해갈 방법을 찾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해 홍보나 대외협력 분야의 업무방식이 투명해지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통신업체 홍보팀장은 “공무원을 중심으로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이 구현되고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포털업체 홍보임원은 “유럽에는 ‘콜드푸드’란 말이 있다. 공무원 등은 외부인을 만날 때 따뜻한 수프를 기대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재섭 박승헌 이충신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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