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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4 18:19 수정 : 2016.07.28 16:36

한국경제연구원 “11조6천억 피해 예상”
중기중앙회 “소상공인 피해 2조6천억”
추정 방법 오류, 논리 비약 곳곳에
일부 주관적 설문을 전체로 확장

오는 9월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정치권·경제계가 각각 3만원, 5만원인 식사와 선물 비용 허용 한도를 높이거나, 금지 대상 금품에서 농축수산물 등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관련 산업 피해가 최대 12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겨레>가 4일 해당 기관들로부터 피해 추정액 산출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방법상 오류와 의도적 과장 등으로 인해 신뢰하기 힘든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피해 예상액을 음식업 8조5천억원, 골프장 1조1천억원, 선물 1조9700억원 등 총 11조6천억원으로 추정했다. 이 추정은 1단계: 법인의 카드와 현금 사용액 산출→2단계: 법인의 전체 접대비 산출→3단계: 공직자·교사·언론인에 대한 접대비 산출→4단계: 식당·대형마트·백화점·골프장 피해 금액 산출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한경연은 1단계에서 2015년 법인 지출액을 카드 사용액 138조원(여신금융연구소 발표 자료 근거)과 현금 사용 추정액 106조원을 합친 244조원으로 제시하며, 법인의 현금 사용 추정액은 한국은행의 ‘2015년 지급수단 이용 행태 조사 결과’에 나오는 카드 대비 현금 사용 비율(77%)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은 자료는 개인의 지급수단 이용 행태에 관한 것이어서 법인에 적용하는 것은 오류다. 한은은 “법인과 개인의 이용 행태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카드 대비 현금 사용 비율을 법인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법인들의 경우 대부분 카드 결제를 이용하고 현금 사용은 거의 없다.

한경연이 3단계로 법인의 전체 접대비 추정액 가운데 21.6%를 공직자·교사·언론인에 대한 접대비로 제시한 것도 논거가 희박하다. 한경연은 접대 대상 후보자(공직자·교사·언론인) 185만명이 접대 제공 후보자(기업체 관리자와 전문가, 사무직 종사자와 서비스 판매 종사자 중 간부) 855만명의 21.6%라고 했으나, 전문가들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추산이라고 말한다.

4단계의 분야별 피해 금액 산출도 객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경연은 식당 피해 추정을 위해 외식업중앙회 자료에서 구한 업태별 손님 1인당 평균 지출단가를 고려해 음식값 구간별로 매출 비중을 추정했다. 예를 들어 한식은 평균 지출이 4만3900원인 점을 계산해 음식 가격대별 매출 비중을 3만원 미만 50%, 3만원 이상~5만원 미만 25%, 5만원 초과 25%로 임의로 안배했다. 한경연은 “한식을 포함해 양식·중식·일식·주점의 가격대별 매출 비중을 모두 구하면 김영란법이 규제하는 3만원 이상 매출 비중은 61.8%가 나온다”며 “공무원·교원·언론인 등에 대한 음식 접대비 추정액 13조8천억원 가운데 61.8%인 8조5천억원은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3만원이 넘는 음식 접대가 불가능해도 그 이하 가격대의 접대는 가능한데도 3만원 이상 가격대의 매출이 모두 없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은 부풀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장한 소상공인 피해 추정액 2조6천억원도 근거가 미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기중앙회는 산출 근거로 소상공인 업소 68만7807곳이 월평균 31만원(연간 372만원)씩 매출이 줄 것이라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중기중앙회는 “업소당 월평균 매출 감소액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난 4월 서울·부산 등 7개 대도시 소재 해당 분야 소상공인 509개사를 상대로 향후 매출이 얼마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물어서 나온 답변을 근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헌진 인하대 교수(통계학)는 “이런 조사가 신뢰성이 있으려면 법 시행과 관련된 전체 소매점 68만여개와 조사 대상 표본 500여곳의 업태별 구성비를 같게 하는 등 엄밀한 조사 방식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번 조사는 업태별 구성비가 제각각이어서 신뢰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식료품 소매, 전문 소매, 음식점, 골프 및 공연시설, 숙박업, 피부관리 등 6개 분야에서 58%를 차지하는 음식점의 조사 대상 표본 비율은 29%로 절반에 불과하다. 반면 골프 및 공연시설은 전체 소매업소의 3.8%에 불과한데 표본 비율은 10%로 3배나 높다.

정부와 국회의원이 발표한 피해 추정액도 신뢰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선물용 농축산물의 연간 판매 손실이 8천억~9천억원으로 추정돼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농림부의 피해액 추산은 1단계: 한우·인삼·사과·배·화훼·임산물 등의 지난해 생산액 8조8264억원 산출→2단계: 해당 품목의 선물세트 비중(21.1~64%)을 적용해 선물시장 규모 3조3576억원으로 산출→3단계: 법 시행 이후 선물시장 감소율을 적용한 피해 예상액(8193억~9569억원) 산출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농림부는 선물시장 감소율과 관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법 시행 이후 농축산물 선물 횟수가 얼마나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결과 최소 24.4, 최대 28.5%라고 나온 응답을 적용한 것”이라고 답했다. 따라서 농림부 자료는 객관적 피해 추정이 아니라 설문조사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은 지난달 28일 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며 연간 매출 감소 피해가 한우 4150억원, 수산물 7300억원, 과일 1600억원 등 총 1조3천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제시한 한우 피해액 4150억원은 농림부 산출 피해액(2072~2421억원)의 2배에 달한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그 차이에 대해 “한우 피해액 등은 농협·수협중앙회를 통해 파악한 수치로, 별도로 검증한 자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단기적으로는 관련 업계 피해가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 부패 감소와 투명성 제고로 성장률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는데, 장단점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보지 않고 단기 피해만 강조하고, 그마저도 신뢰할 수 없는 방법으로 대규모 피해가 날 것처럼 추정하는 것은 현행 방안대로 시행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청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되면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2010년 기준으로 8조2천억원 늘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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