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04 19:58
수정 : 2016.07.28 16:28
|
지난해 12월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위헌법률심판이 제기된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형사정책연구원 최근 연구 논문서
“입법 정당하나 내용에 여러 결함”
명확성·유추금지 등 위헌소지 지적
전근대적인 형사법에 조종을 울린 ‘불멸의 고전’ <범죄와 형벌>에서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는 이런 구절을 남기고 있다. “(법관 등에게만 전적으로 맡겨진) 법의 해석이 하나의 해악이라면, 법의 해석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법의 불명확성도 명백한 해악이다.”
입법자가 법을 모호하게 만들면 집행자의 자의적 해석과 악용의 소지 또한 커지는 것이니, 누가 읽어도 내용을 알 수 있고 위반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는 법이 좋은 법이라는 가르침이다. 요컨대 ‘죄형전단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죄형법정주의’ 선언이었던 셈인데, 그렇다고 그 이후에 모호한 법들이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나라만 해도 ‘명확성의 원칙’을 어겨 위헌 결정을 받는 법률들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법률의 명확성’이 얼마나 중요한 원칙인지를 새삼 일깨운다.
그렇다면 이런 법률 조항은 어떤가. 최초 제안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김영란법’이라고들 부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에선 행위가 아니라 금액을 기준으로 형사처벌과 행정처분(과태료 부과)을 가른다. 공직자가 동일인에게서 ‘1회 100만원’ 또는 ‘한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직무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이 법에선 범죄 구성 요건이 금액인 탓에 한 차례 100만원 또는 그 이하의 금품을 받거나, 1년간 300만원 또는 그 이하의 금액을 받은 공직자는 직무관련성이 드러나도 처벌하지 않고 과태료만 물린다.
이는 수수 금액에 상관없이 ‘직무관련성’을 처벌의 기준으로 삼는, 즉 공직자의 직무행위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사서도 안 된다는 ‘불가매수성’(不可買收性)을 보호하려는 형법의 뇌물죄와 충돌한다. 모순이다. 그런데도 청탁금지법에는 왜 행위의 범죄적 특성이 아니라 그 결과일 뿐인 금액을 처벌 기준으로 정한 것인지, 뇌물죄 등 형법이 정한 범죄와의 경합 관계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실제 적용에선 형사특별법인 청탁금지법이 형법에 우선하겠지만, 청탁금지법이 명확성이나 유추금지 같은 헌법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보더라도 입법 취지는 좋지만 (…) 이 법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법 적용 대상의 불명확성을 예외 조항의 문제로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얼마 전 펴낸 ‘최근 부패방지법의 쟁점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황지태·김유근·박준희 연구원은 청탁금지법이 내포하고 있는 법리적인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정치하게 짚고 있다.
청탁금지법은 구조부터 여느 법률과 다르다. 누군가와 금품을 주고받은 공직자는 일단 이 법의 의심을 받는 혐의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전자상가에서 100만원을 초과하는 냉장고를 가져왔다면, 그 자체로 넓은 범위에서 금지행위에 해당하고, 경우에 따라 범죄행위가 될 수도 있다. 해당 공직자는 죄가 되지 않는 7가지 ‘위법성 조각사유’ 가운데 ‘사적거래’라는 점이 입증될 때만 비로소 혐의를 벗을 수 있다. 청탁금지법은 여느 법률들처럼 어떤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를 정확히 짚어 밝히는 대신 예외조항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따지는 ‘전도된’ 구성 방식을 택한 탓에 헌법이 금한 과잉금지 원칙과 조화되기 힘들다. 또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 유형을 ‘~ 등’으로 나열하고 있어, 생략된 항목이 무엇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 명확성의 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은 금품 등의 ‘가액’ 결정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은 ‘포괄위임입법 금지’ 원칙과 죄형법정주의 같은 헌법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크다.
‘공공성’을 이유로 언론사 임직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공직자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은 ‘평등의 원칙’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 예산이나 보조금이 지급되는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는 순수한 민간영역인데, 공공성을 띤 민간영역은 이 둘 말고도 많다. 예를 들어 민간의료기관 임직원은 공공성이나 부패 민감도에서 언론이나 사학을 능가한다. 의료법에서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취득을 금지하는 특별 조항(제23조의 2)을 둔 것도 그 때문이다. 민간기업, 금융·보험, 변호사, 약사, 건설업체 종사자 등도 공공성을 고려해 상법, 특경가법, 보험법, 변호사법, 약사법, 건설산업기본법 등으로 부정부패 행위를 단죄해 왔다. 언론·사학 종사자도 부정부패 행위를 저지르면 형법의 배임수증재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법률들보다 가벌성의 하한을 훨씬 낮춰 강력하게 처벌하는 청탁금지법에 유독 언론과 사학만 집어넣은 것이다. 입법자는 ‘입법재량’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은 매우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논문은 배우자의 금품수수 행위와 관련해 공직자에게 신고·반환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한 것은 헌법의 연좌제 금지와 책임원칙을 각각 위반한 것일 수 있다고 본다. 헌법적인 문제 말고도 이 법에는 사교·의례·부조 등을 구실로 일상에서 이뤄지는 금품수수 행위를 “원활한 직무수행”을 이유로 면책해 주고, 제3자를 통해 청탁한 사람은 처벌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직접’ 청탁한 당사자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부정한 청탁이 실제로 수행됐을 경우 공직자는 처벌하지만 청탁자에겐 ‘면벌부’를 주는 등 형법이론상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결론에서 ‘정책 제언’을 통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법 내부에 고유한 법리적 결함들을 입법자가 스스로 검토하고 해소할지는 미지수다. 헌재는 9월28일로 잡혀 있는 이 법의 시행 이전에 위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공지한 바 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